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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와아빠의 제주여행#4_돈가스먹으러 가자

by 오인환

중학교 '제주 돈가스 맛집 사회과목'에서는 쓸데없는 것들을 배우는 것 같지만, 돌이켜 보면 상당히 유용한 것들을 배운다. 영어 강사를 하다 보면, 영어 점수만 올랐다고, 아이들이 학원을 그만두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영어가 100점이 나와도 다른 과목들의 점수가 떨어지면 종합학원으로 바꾸기 때문에, '비율제 강의'를 하던 나는 따로 시간을 내어 아이들에게 전과목 과외를 하곤 했었다. 다시 보는 사회 교과서는 생각보다 유용했다. 중학교 사회 2 교과서의 '일상생활과 환경문제'편에는 로컬푸드라는 단어가 언급된다.

로컬 푸드 운동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이동거리를 단축시켜 식품의 신선도를 극대화시키지는 취지로 출발한 운동이다. 이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식품 이동 거리를 최대한 줄임으로 농민과 소비자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행위인데, 교과서에서는 북미의 100마일 다이어트 운동과 일본의 지산지소 운동이 예로 소개가 되었다. 이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운동인데, 사실 빛을 보게 되는 건, '코로나 19 여파 이후가 아닐까 생각한다. 닫힌 세계의 시작을 알리는 세계적인 추세에서 로컬 푸드는 아마 우리 농산물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생산자와 소비자 관계에서 경제적 이익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하더라도, 로컬푸드 운동은 장거리 이동 과정에서 생겨나는 이산화탄소 배출과 식품에 화학물질 사용 증가를 억제하는 등 환경과 건강에 있어서도 매우 효율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돈가스 하나를 먹더라도, 너도 좋고 나도 좋고, 환경과 건강도 좋은 돈가스를 먹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에 '세계의 내일'이라는 책을 보았다. 아이와 함께 세계 여행을 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 아이들에게 먹었던 돈가스 하나라도 교육적인 철학을 담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기도 하다.

'리틀 오사카'라는 돈가스 전문점을 찾았다. '제주 로컬푸드'를 주 재료로 이용하는 돈가스집이다. 청정 제주의 재료를 사용하면서 로컬푸드의 장점을 모두 살리면 당연히 제주도 내의 식당이지 않을까.

아이들과 돈가스 집을 찾아온 것은 처음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서귀포에서 이 곳까지 오려면 한라산을 넘어야 한다. 그렇게 아이들과 한 시간 가량을 차를 타고 제주시로 갔다. '환경'을 나름 생각하는 분위기가 이제야 형성이 되어가는 것은 몹시 좋은 일이다. 내가 타는 차가 전기차라는 사실 또한 나중에 아이들에게 좋은 철학으로 자리 잡힐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름부터가 '리틀 오사카'이다. 우리나라를 영남과 호남, 영동 등으로 분류하듯 일본 또한, 지방을 분류하는 방법이 있다. 그는 '관동'과 '관서'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혹은 영화 등에서 간혹 접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고, 일본 여행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자주 접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내가 살던 뉴질랜드도 크게 북섬과 남섬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섬나라들의 특징이 이렇게 구분된 지역마다 확실한 특색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관동지역은 일본 수도인 도쿄가 있는 곳으로 수도권에 있는 1도 6현을 총칭하는 말이다. 과거 무사들이 있던 곳으로, 평야 주요 부이 기도 하다. 반면 '관서'는 오사카를 중심으로 상인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무역과 상업의 발달한 도시를 말한다.

예전 뉴질랜드에서 유학을 마치고, 일본 소호 무역을 하려고 준비를 했던 적이 있는데, 일본에서 도매 상품을 떼어다가 부산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준비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도매 상품을 떼어오는 곳이 오사카라는 곳이라 오사카에 대해 많이 공부를 했던 경험이 있다. 오사카의 음식은 색이 연하고, 음식 자체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요리가 많은 편이다. 때문에, 채소 요리나 생선, 타코야키, 오코노미야끼 등이 오사카의 대표적인 음식이 되는데 이토록 음식 자체의 맛을 살리는 이유는 발달한 상업 때문에, 신선한 재료 공급이 수월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로컬 푸드와 오사카 음식은 무언가 궁합이 잘 맞는 조합이 않을까 생각된다.


'아침에 돈가스 먹고, 아빠가 공주 하나 더 사야겠네?'

하고 혼잣말을 하니, 아이는 '사지 마. 괜찮아' 라며 안 사겠다고 한다. 다시 재차 물어도 안 사도 된다고 하는데, 이게 뭘 알고 하는 말인지, 그냥 하는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속으로 기특한 녀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입구에는 이렇게 나무로 된 벤치가 있는데, 아이들 보고 사진 찍겠다고 하니, 하율이가 대뜸 포즈를 취한다.


차는 가게 바로 옆에 대어 놓았다. 입구에는 이렇듯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는 충전기가 준비되어 있는데, 나는 집에서 충전을 해도 괜찮기 때문에 따로 충전하지는 않았다. 문뜩 보니 전기차 충전이 무료라고 되어 있다. 요즘 전기차 충전이 유로로 바뀌면서 많은 전기차 소유주들이 당황해했었는데, 이렇듯 충전을 해야 할 때는 기왕이면 이런 무료 충전소로 찾아가서 밥 먹으면서 그간 충전하는 것이 좋은 듯하다. 내가 들어가고 나갈 때까치 아무도 충전기를 이용하지 않았는데, 아마 사람들이 무료인 것을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집에 있으면, 방문을 닫아놓고 아이들이 하는 놀이가 있다.

'똑똑똑! 누구 있어요?'

'들어와요'

언제부턴가 이런 놀이를 좋아하는데, 놀이 방법은 대략 이렇다. 한 아이가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그럼 밖에 있는 아이가 노크를 하며 누가 있는지를 묻고, 안에 있는 아이는 들어오라고 하면 놀이가 끝이다. 이런 놀이의 재미 포인트를 공감하지 못하는 '아빠'이다. 아이들은 들어가자라는 말도 안 했는데, '똑똑똑!'하고 노트를 하더니 대뜸 문을 열어 버린다. 당황했지만, 일단, 찍던 사진을 계속해서 찍는다.


안에 들어갔더니, 아이 의자와 물컵이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역시 예약을 하고 가는 것이 좋은 듯하다. 사장님의 센스의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어찌 됐건, 아기 의자가 세팅되어 있는 배려는 너무 고마웠다. 안을 들어가자 아기자기한 일본풍 디자인의 데코들이 눈에 띄었다.

아기 컵과 내 컵에 물을 따랐다. 맹물이 아니라, 잘 우려진 차가 담겨 있었다. '어디서 먹어 본 차지?' 떠오르지 않았지만, 아무튼 차는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 무조건 필수이다. 사실 일본에 차를 전해준 것은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였다. 물론 우리나라 역시 삼국시대에 중국의 당나라로부터 들어온 것이 유래 이기는 하다. 서로 영향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문화를 키워오는 한, 중, 일 삼국은 밉지만, 어떻게 보자면, 형제만큼 닮은 곳도 많다.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차 씨는 지리산 일대에 심어지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외에도 인도로부터 들어온 설이나, 원래 차 재배지였다는 설도 있지만, 어찌 됐건 차는 삼국의 중요한 음료 문화 중 하나였다.


17~18세기에 영국, 청나라, 인도 간의 삼각무역이 있었다. 영국의 동안도 회사가 세계로 자신들의 면직물 시장을 확대하던 중, 중국 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시가기 있었다. 그 당시, 이 무역에서 영국은 인도에 면직물을 판매하고, 인도는 청나라에 아편을, 청나라는 영국에 차와 은을 넘겨주는 식의 무역이었다. 당시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며 막대한 은을 모으던 영국이 중국과의 무역에서 처음으로 자신들의 은이 반출되는 상황까지 벌어지면서, 위기감을 느꼈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청나라의 차와 도자기의 인기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영국과 청나라가 1차 아편 전쟁을 벌이는 계기 됐다.


메뉴판은 간단하다. 예전에는 이것저것 많이 하는 곳을 가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즐거움을 찾는 편이었다. 하지만,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자, 메뉴가 많다는 것은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자신이 자신 있는 요리를 내어 놓고, 평가받게 다는 자존심은 메뉴판에서부터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사실, 나는 돈가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돈가스는 와이프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와이프는 먹지 못했지만, 아마 아이들은 돈가스를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는 히레가 츠 정식과 가츠오 가락국수 정식을 시켰다.

예전에 일본어 공부를 잠시 했던 적이 있다.

'영어는 이 정도면 됐어! 3개 국어는 해야지!'

라는 희한한 욕심으로 공부한 일본어이다. 일본어를 공부하다 보면, 단어 암기가 생각보다 쉬울 때가 있다. 1868년 일본은, 일왕을 중심으로, 국가를 다시 세우고, 서구식 근대화를 목표로 개혁을 단행했다. 급속한 개화의 시기에, 당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서양의 언어를 차용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일본어는 거의 외래어가 대부분이라고 봐도 될 정도이다. 화장실(toilet)을 '토이 레'라고 하니, 그 정도가 심하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일본의 음식도 외국의 이름에서 차용한 경우가 많다. 얼핏 순수 일본어로 들리는 굉장히 많은 일본 메뉴들도 사실은 영어에서 차용한 언어들이다. 뉴질랜드에서 스테이크를 주문할 때, Filet을 주문하면 안심이 나온다. 안심의 일본식 발음인 히레와 커틀렛의 일본어 발음인 카츠가 합쳐지 히레카츠라는 일본식 돈카츠가 탄생했다. 아이들과 먹을 때는 무조건 '안심' 부위를 먹는 편이 좋다. 안심은 돼지 부분에서 부드러운 부분이고, 특이나 앞서 말한 대로, 이 음식집은 '로컬푸드'를 지향한다. 당연히 제주산 흑돼지가 주 재료이다.

음식은 매우 깔끔하다. 조금만 질겨도 뱉어 버리는 아이들은 돈카츠를 몹시 맛있게 먹었다. 잘 튀겨진 카츠는 튀김옷이 서리처럼 삐쭉빼쭉 서있다. 그것을 한입 베어 물면, '바사삭'하는 소리와 스펀지 같은 안심 부위가 함께 느껴진다.

함께 나온 소스는 한입 넣고 깜짝 놀랐다. 그냥 돈가스 소스라고 생각하고 먹었는데, 살짝 카레향이 나면서 달달하니 맛있다.


아이들과 먹기에 국물이 필수이다. 아이들은 아빠와는 다르게 입맛이 매우 토속적인데, 된장국을 그렇게나 좋아한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가츠오 우동'도 함께 시켰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새우가 우동의 국물에 반쯤 적셔 나왔는데, 바삭함이 그대로였다. 나는 우동를 매우 좋아한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근처 김밥집으로 가서 혼자 우동 한 그릇을 먹곤 했었다. 물론 내가 먹던 우동에는 튀김 종류가 올라가 있지는 않았다. 기왕 라면을 먹을 끄으면 우동이 건강해 보이기도 하고 맛도 있다는 생각에 우동을 자주 먹었었다. 나름 '후~후~' 불어 식혀 줬는데, 아이들이 뜨겁다고 난리다. 그래도 아이들은 준 돈가스를 뱉지도 않고 끝까지 먹었다. 어른들의 말씀처럼, 먹는 것만 봐도 배불다.

함께 주는 것 중에는 양배추 샐러드가 함께 있다. 노란색 소스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했지만, 소심한 성격이라 묻지는 못했다. 아마 금귤 같은 느낌이 났는데, 상큼하니 괜찮았다. 돈카츠를 먹다 보면, 튀김이기 때문에 입을 깔끔하게 해 줄 필요가 있는데, 샐러드 한 입을 먹으면 마치 새로 양치를 한 듯 입 안이 상쾌해지는 느낌이 든다. 신난 아이들 뒤로 귀여운 일식풍 아이템들이 걸려 있다. 주방은 열려 있는데, 희한하게 튀김을 많이 하는 집 특유의 기름 냄새가 나지 않아 좋았다. 아이들이 벽에 붙어 있는 부채를 보며 뭐냐고 묻는다. 부채와 우산이라고 알려줬다.

부채는 원래 귀족들이 자신들의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했다. 하지만 처음 부채가 처음 중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갔을 때, 일본인들은 귀족이라고 해서 얼굴을 가리는 문화가 없었다. 때문에, 일본인들이 부채를 처음 접했을 당시에는 부채로 얼굴을 가리는 대신, 파리나 모기와 같은 벌레를 때려잡는 용도로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채는 접는 부채와 둥근 부채가 있는데 둥근 부채는 이처럼 파리채의 역할을 했다고 하니, 실제로 음식집에서는 무조건 있어야 하는 필수품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천장에 붙어있는 우산을 보며 몹시 신나 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요즘 우산에 꽂혀 있다. 어른들이 자주 사용하는 아이템이라 그런가. 내가 뉴질랜드를 처음 갔을 때, 몹시 놀랐던 장면이 하나 있다. 보슬보슬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뉴질랜드 사람들은 우산을 쓰지 않고 비를 맞고도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비가 오면 바로 우산을 쓸 것 같은데, 참 여유 있는 사람들이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 또한 약간 오는 비에는 우산을 쓰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곧 알게 되었다. 뉴질랜드와 같이 햇볕이 좋은 나라는 약간 맞은 비 같은 경우는 얼마간 햇볕을 쏘이면 금방 말라 버린다. 또한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질 일도 없고, 가랑비가 조금 오다 마는 정도의 수준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우산을 자주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습도 때문이다. 일단 비에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 습한 기온의 나라이기도하다. 전 세계 비닐우산의 80%를 수입하는 곳이 일본이라니, 일본의 우산 사랑은 알아줘야 한다. 식당 뒤에 달려 있는 그림은 아마 많이 봤을 법한 그림이다. 이는 '도슈사이 샤라쿠'라는 에도시대 중기의 우키요에 화가의 작품이다. 그는 간세이 6년(1794년) 5월부터 이듬해 간세이 7년(1795년) 3월까지 약 10개월의 기간 동안 약 145점의 우키요에 작품을 출판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의 본명, 생몰, 출생지까지 모든 것이 알려진 봐가 없다. 이는 메이지 시대(1868~1912)에 사진, 제판, 기계 인쇄 등이 유입되면서 서서히 쇠퇴해 갔지만, '쟈포니즘'이라는 이르므로 당시 유럽인들에게 애호되면서 많은 서양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 후 200년간 고흐, 마네, 모네, 드가 등의 서양 화가들이 샤라쿠의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놀라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 정조 때 연풍현감이던 김홍도가 정조의 명을 받고 일본으로 첩보활동을 하기 위해 파견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 12번의 조선통신사를 파견했다. 하지만, 정조는 재위 기간 동안은 일본의 국내 사정으로 인해 단 한차례의 파견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정조는 일본의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해했고, 1794년 3월 5일, 승정원 승지 전원에게 외부 출장을 명령했다. 그리고 그날 김홍도를 불러 에도에 잠입하라는 어명을 내렸다고 한다.

당시의 항해기술로는 대마도를 통해 일본으로 도착하는데 두 달에서 두 달 반 정도 걸린다고 추정했을 때, 아마 김홍도는 4월 하순이나 5월 초 정도에 일본에 잠입을 성공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김홍도가 일본으로 넘어가고 10개월 후 조선으로 귀국하고 난 뒤부터, 샤라쿠는 활동이 없어진다.

밥을 먹다 말고, 하율이가 '이게 뭐야?'를 시작했다.

'초가집이야'

'귤이야~'

글과 사진으로는 참 아름다운 날이지만, 왜 이렇게 속으로 식은땀이 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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