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말로는 '생각 비우기' 혹은 '명상'이라고 부르지만, '멍 때리기'라는 순수 우리말이 더 와 닿는다. 최근에는 멍 때리는 일이 많다. 그냥 고요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맞지 않는 초점을 맞추고 의식의 흐름을 놓아버리는 행위를 오래간 지속 한다. 예전에 '멍 때리면 머리가 나빠진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그래서 한 시도 쉬지 않고 생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뭐라도 해서 채워 넣어야 했던 강박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스스로를 생각해 볼 여유를 잃었는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멍 때리는 시간이 많다. 물론, 그럴 시간이 부족하지만 조용한 저녁시간 혼자 남게 되면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다. 멍 때리면 머리가 나빠진다는 속설이 진짜 인지는 모르겠다. 진짜면 좀 어떤가. 멍 때리고 싶은데...
가만 보면, 쉼표 없는 음악을 듣는 것 같이 머릿속이 복잡할 때가 있다. 모든 음악에는 쉼표가 들어간다. 하지만 잠자는 순간까지 영상과 소리에 노출되어 있고 걸어 다니는 순간과 운전하는 순간, 누구를 잠깐 기다리는 순간, 상대와 대화 중 비워 있는 1~2초의 찰나의 순간까지 모조리 채워내 쉼표 하나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 하나하나 쫒아 가 보려 노력해도 쫒아 갈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야기인데, 모든 것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뿜어내며 단, 한순간도 쉬지 않는다. 최소 정신없이 달리고 있을 때, 내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살피려면 잠시의 쉼이 필요하다. 지도를 다시 살피고 지형을 살피고 왔던 루트를 살펴보고 함께 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살펴보아야 한다.
이제 와서 틀리면 어쩔 텐가 따위의 생각을 갖고 가는 방향에 전력 질주를 멈추지 않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멍 때리는 일인 것 같다. 나는 내 눈동자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볼 수가 없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나를 보고 '말똥 말똥'한 표정을 짓고 있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고나서 친구들은 내가 가끔 무념무상하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고 했다. 나는 단 한순간도 그런 표정과 눈빛을 해 본 적이 없었지만, 나의 눈빛이 비워져 보이는 것은 원래 내가 가져야 할 일종의 정체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나는 눈빛이 강한 사람들을 동경했다. '정주영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젊은 시절 눈빛처럼 눈에 생기가 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될 수 있으면 눈에 힘을 주고 살았고 목적이 없는 행동은 일절 하지 않았다. 아마,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니, 벌써 10년이 넘은 듯하다.
내 옷이 아닌 옷을 입고 살아간 시간 동안, 나의 체형은 내가 입었던 옷에 맞게 바뀌어져 있었다. 더 이상 예전의 옷으로 갈아입어도 내 옷 같지가 같다. 멍 때리는 일은 어려운 일도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닌데, 왜 수 분, 수 십 분을 그냥 멍 때리면 안 될 것 같다는 죄책감에 쌓여 있게 된 걸까.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아무것도 듣지 않는 시간을 갖는데 죄책감을 덜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