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아직은어린것같다._꼰대들이 존경되는 하루

by 오인환

음악 영상에서 가창력 좋은 가수가 노래를 부른다. 음악프로 패널 혹은 청중은 눈물을 흘린다. 결단코, 그 모습이 진심이라고 느껴 본 적이 없다. 감성이 그토록 메마른지도 모르고 살았다. 시청률 끌기 위한, 주목받기 위한, 영상 제작자의 의도된 편집과 연출이 합을 이뤄 만들어낸 사악한 자본주의의 거짓이라고 생각했던 기간이 나에겐 길었다. 그도 모르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었던 나를 돌아본다. 왜 사람들은 나에게 자신의 고민들을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는가. 당시에는 내가 했던 공감은 진심들이었는가. 반성한다. 내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은 누구도 겪어보지 못했을 거라는 자만이 가득 찬 인생...

달콤한 사탕을 모두 먹어버렸으니, 내게 남은 건 쓰다 쓴 한 사발의 약뿐이다. 코를 막고 마셔야 할 약을 앞에 두고서 사탕보다 약을 먼저 마시던 이들을 비웃던 모습이란...'꼰대'들의 잔소리가 결국은 모두 먼저 경험해 본 이들의 진실이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공부하라던 부모의 잔소리를 나는 그 나의 내 또래에게 하고 싶어 지고, 달콤한 열매를 먹기 위해 눈 질끈 감고 쓴 약을 들이켜라는 소리 한다. 그들이 겪었던 길을 겪으며 같은 느낌을 느낄수록 '결국 인정하고 싶지 않은 '꼰대'들이 옳았다.'는 증명을 내가 꼰대가 되어가며 하고 있다.

'녹색지대'는 아주 오래된 가수이다. '준비 없는 이별'을 듣는데. 어쩌다 내가 이 노래를 듣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Cover 한 이 노래를 듣고 예전과 같이 '캬~ 노래 좋네!!!' 하는 '쿨'한 감상평을 할 수가 없다. 그런 감정을 이미 나만 빼고 많은 사람들이 느꼈겠지 싶다. 어른들이 하던 거짓말 중 가장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거짓말이 하나 있다.

'열심히 노력하면 뭐든지 된단다'

'새빨간 거짓말'

세상에는 노력하지 않아도 이뤄지는 것들도 많고, 노력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들은 더 많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내가 했던 최선이 상황의 최선을 도출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3층짜리 건물 입구를 들어서 놓고, 정말 노력한다면 10층에 올라설 수 있을까? 모든 건, 나의 역할에 결정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건 결과를 만들어내는 아주 조그마한 구성들 중 하나일 뿐이고 그 비중이 높지도 않으며 필요충분조건도 아니다. 100가지, 1000가지 구성 중 하나의 옵션일 뿐이다.

열심히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다만 1%의 가능성에 'Yes'와 'No'가 결정되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성패에 영향을 줄 뿐이다. 성공할지 실패할지 49대 51의 비율이라면 나의 노력은 분명 성공의 키포인트다. 조금 더 살아보면 알겠지만, 수 십 년을 회사를 위해 밤낮없이 일했던 한 부장이 회사의 위기와 함께 퇴직하며 대리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나 '불법 스포츠 토토'를 즐겨하던 스무 살짜리 어린 대학생이 우연히 '비트코인'을 발견하면서 강남에 수 십 층 짜리 건물을 보러 다니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 가정을 지키는 일, 사랑을 하는 일, 돈을 버는 일, 명예를 갖는 일, 직업적으로 성공하는 일...

그 또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모든 일에는 의미가 사라진다. 하지만 새빨간 거짓말에 속지는 말아야 한다. 너무 염세적인가.

1945년에는 일본 히로시마에 살고 있던 '아무개'는 그 모든 것에 충실했을지도 모른다. 진심을 다하면 하늘이 알아줄 것이라고 바라던 수많은 사람이 있었을 테지만, 젊은 시절 조금 더 노력하면 좋은 결실이 있을 거라 믿던 수많은 사람은 원자탄이 폭발하며 모두 사라졌다. 7만에서 12만이 사라진 이 이야기는 '역사'라는 것을 배제하고 본다면 개인에게 너무나 슬픈 일이다.

앞서 말한 '준비 없는 이별' 그런 건 존재한다. 열심히 살아도 머리 위에 섬광이 터지며 사라지는 것이다. 모든 걸 바쳤다고 생각했던 최선의 인연이 탈출구 없는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꼭 나의 이야기만 하자는 것은 아니다. 과연 내가 느끼는 '목울대' 가득한 무언가를 삼키는 일들을 '꼰대들'은 가슴속에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웃는 얼굴과 아무렇지 않은 그들의 여러 페르소나 속에 어린 나의 어리광이 그들에게도 뻔히 보이는 일이겠다 싶다. 마치 의미 없는 학창 시절 바지단 줄이고 머리에 젤을 바르던 일처럼 지난 내가 봤을 땐, 전혀 멋도 의미도 없는 것들이 그들에게 전부인 것처럼, 내가 겪는 일들도 그들에게는 별일 아니겠지 않겠는가. 꼰대스러움이 좋은 건 아닌데.. 흙탕물에 뒹굴던 군대 유격 시적 문뜩 이래저래 고통을 삼키는 순간에 상대의 얼굴을 보자면 '저 녀석도 그러고 보니 나랑 같은 고통이 있구나'의 공감 같은 것들이 그들에게 느껴진다.

나중에 내가 그 꼰대의 나이를 넘어서면 지금 작성한 이 글도 귀여운 투정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이미 그만큼의 나이가 찬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금 그런 글이지 않을까. 기운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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