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상대에게 힘을부 돋아주는 주술

by 오인환

'엑스펠리아르무스!!'

'익스페토 페트로눔!!'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등등

이것들은 해리포터에 나오는 주문들이다. 이 주문을 외우면 상대의 손에 잇는 물건이 공중으로 날아가기도 하고 물체를 공중으로 띄울 수도 있다. 판타지 소설인 해리포터에서는 기껏 해봐야 물체를 움직일 수 있지만, 우리는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움직이는 주술을 사용 가능하다. 그것도 언제든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쌍둥이 녀석 들어 언제나 웃는 얼굴로 나를 반긴다. 녀석들의 웃음은 전염이 된다. 아무런 강압도 없이 나의 얼굴에도 미소가 생긴다. 녀석은 오자마자 말한다.

"아빠, 왕자님 같아~"

그러면 나는 곧 대답한다.

"하율이, 다율이 도 공주 님이네?"

나는 '나비효과'라는 말을 좋아한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 결국 큰 변화가 된다는 말이다. 스트레스가 가득한 어느 날, 녀석들의 웃음을 보지 않았더라면 펼쳐질 내 머릿속 복잡한 화학작용들은 내 다음 행동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것은 다음 상대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것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모든 건, 상호작용된다. 내 미소는 상대의 기분을 바꾸고, 바뀌어진 상대의 표정에 내 기분도 바뀐다.

이렇듯, 상대의 감정과 행동,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나'는 결국 내 인생 또한 좌지우지할 수 있다. 의미 없고 외우기 어려운 주술을 입으로 중얼거리는 행위보다 훨씬 더 영양가 있고 스스로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문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는 '칭찬'이다.

"열심히 했구나"

"지금 그대로가 보기 좋아"

"멋있는 생각이야"

등. 앞서 말한 해리 포토의 주문들보다 짧고 쉬운 주문은 상대의 감정과 행동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것은 곧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을 꽤 만나보면 여러 종류의 리더가 있다. 그중 채찍질이 더 빠른 마차를 몰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 리더들이 있다. 이 채찍은 단기적 효과가 뛰어난 것은 사실이다. 나는 이런 류의 리더와 일을 했던 기억이 몇 번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과 일하지 않는다. 그들과 일할 때, 생길 내 몸과 마음에 생채기들이 나의 모습을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비록 마차를 빠른 속도로 몰 수 있는 능력 있는 말이 되겠지만, 내 몸 이 곳, 저곳에는 지울 수 없는 상쳐로 가능할 것이다.

이는 다음 나를 맞이할 타인에게 보일 흉터일 뿐이다. 이런 생채기가 가득한 사람은 '무능한 과거'를 반영하는 문신일 뿐이다. 태국에서 코끼리를 타는 관광코스를 갔던 적이 있다. 늙디 늙은 코끼리는 무거운 관광객을 등에 지고 높고 가파른 경사를 오르고 내렸다. 이들을 조련하는 조련사들은 꼬챙이가 뾰족한 도구로 코끼리의 허벅지와 엉덩이를 마구 찔렀다. 코끼리는 자신의 살에 '푹'하고 들어가는 꼬챙이를 느끼고 불행한 눈으로 다음 발걸음을 옮겼다.

유능한 코끼리가 된다는 것은 그 세계에서도 부질없는 짓이다. 유능한 코끼리는 더 많은 짐을 지고 이용당할 뿐이다. 스스로의 인생이 아닌 일에 더 많은 생채기를 남기는 일 따위를 '능력'이라고 비유하며 조련하는 무능한 리더의 기만일 뿐이다. 그 무능한 리더는 죄가 없다. 그 무능한 리더는 다른 무능한 리더에 의해 조련당했을 뿐이다.

칭찬을 하지 않는 일을 굉장한 프로페셔널한 자세라고 착각하는 리더들의 리더십은 팔로워들은 바꿀 능력도 없고 바꿀 수도 없다. 그런 리더를 만난다면, 그들의 리더십이 바뀌길 기대하거나, 바꾸려 노력해서는 안된다. 그저 그의 밑을 나오는 수밖에 없다. 따르는 사람이 없는 리더는 리더가 아니다. 수년 전 내 리더는 항상 입에 달고 산 말이 있었다. '공과 사'라는 말이다. 사적으로 굉장히 친하다가도, 공적으로는 굉장히 엄격했다. 그의 칭찬 한마디를 듣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열정을 쏟았던 기억이 있다. 물론 잦은 칭찬은 그 감흥을 퇴색시킨다. 하지만 전혀 창찬없는 일은 열정을 꺾어버린다.

칭찬은 중요하다. 남발을 할 필요가 없지만, 구체적인 일에 '팩트'에 근거한 칭찬은 남발해도 좋다. 단순히 '너는 일 잘하는 직원이야'라는 칭찬보다는 "이번 일은 정말 훌륭했어" 등의 칭찬은 참아선 안된다. 이는 멋있는 카리스마도 아니고 프로페셔널한 자세도 아니다.

칭찬은 과거나 미래를 하지 말고 지금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잘해왔잖아!"

라는 말보다

"지금도 잘하고 있어"

가 효과적이고

"더 잘될 거야"

라는 말보다

"지금처럼만 하면 돼"

가 더 효과적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과거의 나는 시간이라는 강물 위 뗏목을 타고 지나온 다른 장소의 '나'일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미래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장소의 '나'이다. 지금 배를 곪고, 휘몰아치는 강물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나'는 오직 현재에서만 존재한다. 지나온 '나'와 도달하지 않은 '나'에게 주는 한 덩이 빵은 지금 나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모든 일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좋고, 나쁘다의 측면.

따지고 보면, 두 가지가 아니라 수 만 가지는 족히 더 될 수도 있다. 모차르트와 에디슨은 각기 다른 종류에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100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다만 수 만 가지 중, 모짜 라트는 '음악'이라는 영역에 남들보다 더 많은 능력을 부여받았을 뿐이다. 에디슨 또한 남들에 비해 '발명'이라는 능력을 더 부여받았다. 아마 에디슨의 피아노 실력과 발명 실력, 모차르트의 발명 실력과 피아노 실력을 합치면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부족함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진정한 보석을 발견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모짜 라트를 바라보며 소리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발명에 소질도 없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녀석!!!"

가만히 생각해보자. 그들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는 건, 누구의 잘못인지... 바로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리더의 무능이다. 부하직원의 무능을 탓할 것이 아니라, 부하직원의 좋은 점을 발견하지 못하는 리더의 무능도 존재한다. 도저히 구제불능의 부하라면, 과감하게 잘라버리고, 도저히 배울 것 없는 리더라면 과감하게 나가는 것이 맞다.

이제는 '융합'의 시대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발명과 음악도 이제는 기술과 문화에 의해 잘 섞인다. 이제는 사람의 천차만별의 능력이 모두 존중받는 시대다. 어쩌면 지금 조금 남아 있는 관료제의 끄트러미를 이용하여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되려 한다면 시대의 마지막 꼬리를 붙잡고 허세를 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을 보면 '혼'을 내기도 한다. 아마 무서운 표정의 아빠를 보고 크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하는 일에 칭찬할 때는 아낌없이 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어떤 일을 잘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하고 있는 '지금'의 칭찬은 매번 쌓여 좋은 데이터베이스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지나간 과거나 막연한 미래가 아닌 '지금'의 자신의 능력을 항상 확인받은 아이들은 앞으로 자신이 더 잘할 일을 스스로 알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스스로가 무엇이 뛰어난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길을 더 잘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배운 칭찬의 기술을 자신을 돕는 부하직원들과 후배들에게 사용하며 또 다른 좋은 능력자들을 발굴하는 좋은 리더가 될지도 모른다. 추석날, 싸우다가도 가끔 스스로의 것을 양보하는 아이들에게 자그마한 칭찬을 하면서 든 망상이 이렇게 오늘의 포스팅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이 또한 아이들에게 감사해야 할 한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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