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다는 것은 나쁜 것인가. 열심히 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삶은 스스로를 태우는 일인 듯하다. 유아기에 달아오르다가 청년기에 뜨겁게 타오르고 절정을 찍으면 중년부터 은은해지는 듯하다. 언제나 타오른 다는 것은 분명 청년스러운 일이지만, 세월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노년은 젊어 보이기보다 부자연스러워 보일 때가 많다. 뉴질랜드에 함께 살던 집주인은 나이가 70에 가까웠다. 외출 시에는 차분한 중절모를 깊게 눌러쓰고 외출했다. 그의 중절모는 누가 보더라도 노신사들에게 잘 맞는 아이템이다.
우연히 그와 맥주를 마시다 그의 예전 사진을 본 적 있다. 흔히 말하는 훤칠한 외모와 키에 다부진 몸을 가진 모델 같은 그의 젊음은 세련되었다. 그는 젊은 시절의 모습을 깊은 눈으로 바라봤다. 그 또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해 보였지만, 그는 그 시절 사용하던 의복이나 물품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의 나이에 걸맞은 아이템을 사용했다. 대표적인 것이 중절모였다.
청년이 쓰는 중절모는 촌스럽기 그지없지만, 노신사가 쓰는 중절모에는 기품이 느껴진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끝나면 겨울이 온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계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자기부정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20대는 20대 답고, 30대는 30대 다뤄야 한다. 40대는 40대 다뤄야 하고 50대는 50대 다뤄야 한다. 불타오르는 열정이 식는 순간을 부끄러워한다면 꺼질 불씨에 바람을 보태어 더 활활 태울 수밖에 없다. 주어진 땔감이 정해져 있는데 지금 당장 더 탈 수 있다는 환상에 자신을 재촉하는 일은 미래의 열정을 미리 더 끌어다 쓰는 대출일 뿐이다. 지쳐 있는 말에 채찍을 더 가하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몇 걸음 더 띌 수는 있지만 곪아 있는 배의 굶주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휴식이건 열정이건, 우리 몸에 적당히 남아 있는 불씨를 언제 태우느냐도 중요하다. 매 순간 활활 타버리는 불씨는 지속성을 잃는다. 나의 땔깜이 허튼 열정에 타는 일이 없게 기회를 잘 만들어야 한다. 매번 조금씩 나눠진 열정으로는 장거리 가속이 불가능하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튀어 나갈 수 있기 위해선, 쓸데없는 모든 시기를 태우려 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