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식당 식탁을 치우는 이유_아웃백

by 오인환


이상한 강박이 있다. 식당에 가면 커다란 접시에 먹었던 식기를 전부 정리한다. 물티슈로 먹었던 테이블도 깨끗하게 치운다. 집에서는 조금 편해지더라도 식당만 가면 이렇다. 이런 모습을 아이들이 지켜 본다. 교육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하나 둘 정리하다 보면, 끝내 이처럼 완전하게 치워진다. 전화를 받으며 끄적거리는 것처럼 의도나 의미가 없다. 이런 모습이 때로는 상대에게 불편함을 준다. 함께 식사하는 상대에게 티가 나지 않도록 두어 마디를 이야기하면 하나씩 옮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이렇게 산처럼 쌓여 있다. 남들보다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봤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남들보다 많이 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이유는 내 경력이 '한국'과 '해외'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과연 어떤 삶을 살았나. 돌이켜보면 그것이 다 자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저임금을 받았던 보상은 '최저'의 보상이다. 그 외로 나에게 쌓인 보상에 비하면 말이다. 값진 기억을 갖게 된 것은 행운과 닮았다.


사람들은 나를 'Glassie'라고 불렀다. 발음에 따라 '글라시'라고 하는 이도 있고, '글라시에'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만 스물의 이야기다. 주말에는 '클럽'으로 변하는 '바'에서 일했다. 동양인은 나 밖에 없었다. 훤칠한 외모에 조니 뎁을 닮은 'Andy'는 미국에서 왔다. 나를 유독 잘 챙겨 준 형이다. 노란 머리에 파란 눈을 했다. 영화 배우를 했어도 부족했을 외모였다. 그와 함께 일하던 이는 Terran이다. 그는 호주인이었다. 준수하게 생기고 덩치가 큰 그를 '유로피안'이라고 생각했다. 사장에게 물어보니 'Terran'은 중국계 혼혈 호주인이라고 했다. 이 둘은 나를 'Glassie'라고 불렀다. 검정색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뒷 주머니에 빨간 헝겁을 꼽고 다녔다. 임무는 뜨거운 증기 세척기에서 나온 유리잔을 빨간 헝겁으로 닦는 일이다. 바에는 손님이나 직원, 어느 쪽에도 동양인이 없었다. 시내에서는 흔하디 흔한 동양인이지만, '바'에만 들어서면 유일한 동양인이 됐다. 그 시절, 손님들은 '바텐더'가 아니라 나에게 잔을 따라주길 원했다. 호기심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이들에게 잔을 따라주면 그들은 50불짜리 지폐를 던졌다. 알딸딸하게 취한 이들이 던지는 팁이다. 마른 헝겁으로 잔을 닦는 아르바이트생을 '글라시에'라고 불렀다. 어두운 조명에 잘 보이지 않는 나를 드러내기 위해 빨간색으로 머리를 염색했다. 그 뒤로 바텐더 들은 하나 둘, 바뀌었다. 그 바에서 가장 오래 일했으며 당골이라면 모두가 아는 그런 인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한국인 형들이 사는 곳에서 동거했다. 그 전에는 인도인, 이탈리아인, 일본인이 함께 동거했다. 방을 나눠 쓰는 '플랫쉐어'를 주로 했다. 플랫메이트들은 나에게 물었다.


"너는 잠은 안자?"


"들어오질 않는데 뭐하러 플랫은 구해놨어?"


"너는 공부하러 온 거야 일하러 온 거야?"


함께 하던 형들은 나를 '잡스'라고 불렀다. 바에서 일하는 '글라시에' 뿐만아니라, 근처 학교에 청소기를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함께 했었다. 그 주변 아파트 청소도 했었고 동료 DJ의 집에 정원정리 하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플라이어(Flyer)라고 부르는 아르바이트도 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전단지를 돌리고 '얼리버드'라고 하는 사업을 설명하는 일이었다. 영어가 서툰 동양인이지만 지나가던 이들은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뿐만 아니다. 오피스 청소를 하기도 했다. 리테일 가게에서 정리와 창고직을 일하기도 했다. 일식직 주방에서 일했을 때, 사장님은 나에게 철판요리를 배워보라고 권유하셨다. 철판요리를 하다가 화려하게 뿌려지는 불쇼를 보고 그 일을 그만두기로 작정했다. 해외에서 아르바이트를 이처럼 많이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주차장 안내를 위해 커다란 화살표를 들고 서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때는 참 별의별 일을 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려니 더이상 떠오르지도 않는다. JYP오디션에서 인기상을 받은 기억도 난다. 1부, 2부로 나눠 진행하던 행사였는데, 1회를 마치고 2회 진행을 요청 받았던 기억도 있다.



한국에서도 일을 많이 했다. '마트'에 아르바이트로 3개월 계약을 했다. 스무살 첫 아르바이트였다. 점장님은 갓 스물이 된 나에게 '야채,과일 코너'를 맡기시며 농담하셨다.


"니가 여기 팀장이다.! 가격이랑 재고파악도 다 니가 해봐!"


팀장이라니, 이어서 점장은 말했다. 팀원은 나밖에 없다고 말이다. 엄마가 사다주는 수박이 아니라면 마트에서 수박 한 번 사본 적 없었는데, 손님들은 나에게 맛있는 수박을 골라 달라고 했다. 적당히 겉을 통통 두들기고 소리를 듣는 척하다가, 가장 색이 진한 하나를 꺼내 드렸다. 일부 손님은 속이 거뭇 썩어버린 수박을 들고와서 항의하기도 했다.


"직원분이 골라주셨는데, 이렇게 썩어 있네요!"


얼굴이 붉어지지 못했다. 다음 손님의 요청이 계속해서 왔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8천 원 이던 수박이 오후에는 2만원이 됐다. 가격은 내 마음이었다. 8천원을 붙이면 수박이 빨리 빠져 나갔다. 냉장실 창고로 가서 다시 수박을 채워 놓기 무섭게 수박이 빠져 나갔다. 너무 지쳐서 힘들 때면, 수박 바코드에 2만원을 찍어 놓았다. 수박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줄었다. 꽤 큰 매장이었는게 가격 책정이 이처럼 대중없이 되는 걸보고 황당했으나, 같은 수박을 사가는 사람들은 불과 5분차이로 2배 이상의 돈을 지불했다. 야채코너 매출이 올랐다. 점장님은 빨갛고 예쁜 과일을 하나 보여주며 말했다.


"오! 꽤 하는데? 이번에는 이거 한번 팔아봐. 잘 할 것 같아서 맡기는 거야."


주먹만한 과일이었는데 하나가 1만원 꼴이다. 껍질을 까면 아이 주먹만한 속이 나올 것 같았다. 어쨌건 과일의 색은 빨갛다. 과일을 진열하고 있는데 손님이 물었다.


"어머 이게 뭐에요?"


"용과라는 과일이에요. 맛있겠죠? 여성분들 피부 미용에 좋고 변비 있으신 분들, 변비에도 좋아요. 비타만 A,B, C가 풍부하고 미네랄이 많죠."



인터넷을 찾아보니, 대략 과일들의 효능이라는게 비슷하다는 것을 보고 둘러댔다. 서울에서 여행왔다는 신혼부부는 이 과일을 5개를 구매해 갔다. 하나 둘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점장이 새롭게 들어온 품목이 대박이 나는 조짐을 보였다. 그때, 옆에 있던 채소코너 아주머니가 불렀다.


"그거 먹어보고 파는 거야?"


"아니요. 샘플이라고 받은 건 없어서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나를 '관계자외 출입금지' 지역으로 데리고 가더니, 용과 하나를 잘라주었다. 빨간 껍질 안에는 투명색 알맹이가 있고 검정 씨가 있었다. 씹었다. 물컹하는 것이 삶은 무를 씹는 것 같기도 하고, 키위를 씹는 것 같기도 했다. 다만, 맛이 없었다. 맛이 없다는 것은 별로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맹맛이었다. 그 뒤로 손님들이 물으면 이렇게 대답했다.


"건강에는 좋으나, 맛은 없습니다."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도 했다. 완공된 공사장에 마무리 하는 작업이었다. 돌이켜 보니, 마트보다 먼저 했던 걸 봐서 이게 첫 일한 경험인 것 같았다. 일과를 마무리 할 때는 집 안에 들어가 문과 가구에 붙어 있는 비닐을 벗겨내는 것이었다. 비닐을 벗기는데 마지막에 빠직 하면서 문짝의 표면이 같이 올라왔다. 뜯어진 것이다. 몇 개가 뜯어지자, 팀장님이 오셨다.


"야이 사람들아. 이걸 이렇게 뜯어 놓으면 어떻게 해!! 잘 봐!"


팀장님은 멋있게 몇 개를 뜯으셨다. 팀장님의 뜯은 부분도 여지없이 표면이 벗겨졌다. 팀장 님은 말했다.


"에고, 그냥 이렇게 뜯어라."


우리는 그것을 뜯었다. 새 아파트가 망가지고 있었는데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던 알바생이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생각해보니, 팀장이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하다. 농장 하우스 짓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삼계탕집 알바와 보신탕집 알바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할수록 깨닫는 점이 있다.



아주 찰라의 순간 느끼는 행운이 생긴다는 것이다. 가령 끈적 끈적한 삼계탕집 테이블 정리할 때, 어느 누군가가 깨끗하게 치워 놓으면, 그 짧은 순간 인생의 희열이 느껴졌다. 실제로 식당에서 내가 먹은 거 정도 정리해보니 그닥 어렵거나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뒤로 일하는 이들에게 행운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사실 아이와 식당에서 식탁을 왜 치우는지를 이야기 하다보니 빙빙 돌아 내 아르바이트 경력을 이야기 했다. 사실 이것은 마지막 '주간 챌린지' 내용이다. 사실 여행계획서 따위를 쓸까 했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글이 쓰여졌다. 이제 곧 한국 축구 경기가 있다. 사실 더 길게 쓸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여기까지만 쓰고 축구 보러 가야겠다.



길고 긴 6개월이 주간 챌린지가 끝났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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