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각자의 독서법이 있겠지만, 나의 독서법도 특이하다. 글을 읽다가 가슴을 후벼파는 문장이 있다면, 스마트폰을 꺼내고 바로 캡쳐를 한다. 함께 떠오른 아이디어는 간혹 적어두지만 대게 메모와 함께 하진 않는다. 갤럭시 스마트폰 기준으로 '카메라 설정'에 '빠른 실행'을 들어가면 전원버튼을 빠르게 두 번 누르는 것으로 카메라를 실행하도록 변경 할 수 있다. 좋은 문장과 아이디어는 '찰라'의 순간 떠오른다. 메모하거나 받아적다 보면 전체 맥락이 끊긴다. 본능적으로, 혹은 반사적으로 서부영화의 총잡이처럼 행동한다. 스마트폰을 듦과 동시에 전원버튼을 빠르게 두 번 누르고 찍는다.
닫혀 있는 엘리베이터에서 숨막히는 '낮선이와의 대치' 중, 그쪽과 이쪽은 마치 짜기라도 한듯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대부분 의미없이 지난 카카오톡을 살펴보거나 사진첩을 훑는다. 분명 엘리베이터는 전파가 터질 리가 없는데 뻘쭘한 양쪽의 엄지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인다. 읽은지 꽤 지난 책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반사적으로 나를 자극하고 사라졌던 흔적은 의미없는 시간에 다시 되살아난다.
'개그맨' 김형인 님의 글 중 다시 한 번 나를 자극하는 문장을 만났다.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지말고, 무슨 일이 있어도 견딜 수 있게'
과연 그렇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이 있다. 과거에는 이 말이 참 미련하다고 생각했다. 고생하지 않을 수 있다면 안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여겼다. 다만 피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현실직시'다. 현실과 이상을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비는 내릴 수도 있다. 그것은 '확률'적인 일일 뿐, 아무 의미가 없다.
젊어서 고생을 사서라도 한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젊을 때는 '거적때기'를 입고 다녀도 괜찮지만, 나이가 들면 '입신'이 좋아야 한다고. 여기서 말하는 '입신'은 '출세'를 의미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입은 옷'을 말씀하셨다. 스무 살에는 1만원 짜리 옷을 입어도 개성으로 봐주던게, 한살 한살이 채워질수록 '인생 평가 기록표'처럼 보여졌다. 언젠가 어머니가 아주 고가의 바람막이를 구매하신 날이 있다. 시장에서 쉽게 구하는 옷과 별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 바람막이가 수 십 만원이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자,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나이가 들면 비싼 걸 입어도 비싸 보이지 않는다. '젊을 때는 아무거나 입고 나이가 들면 갖춰 입으라.' 어머니가 하신 말씀은 이러했다. 젊음은 가난도 자랑이 되지만, 나이들고 가난은 자랑이 될 수 없다. 고난을 겪을 거라면, 최대한 젊을 때 겪으라고 하셨다. 처음 창업을 할 때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망하려면 젊을 때, 망해라. 나이들고 망하면 일어서기 힘들다.' '젊음'이라는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는지의 문제만 차치하고, 어떤 고통이라도 빨리 겪어보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 20대에 푼돈 500만원을 가지고 주식투자를 했다. 이 돈은 석 달 뒤에 1억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20배의 수익률을 보며, 내가 주식의 신이라도 된 듯 여겼다. 500만원이 1억으로 늘어나느데는 3개월이 걸렸다. 다만, 1억이 3천만원으로 쪼그라드는데는 열흘도 걸리지 않았다. 경험이라는 것은 그렇다. 한낫 신기루에 불과하다. 500만원이 1억을 스치고 3000만원으로 출금될 때, 사람들은 최고점의 1억원이 자신의 것이었다고 착각한다. 아니다. 그것을 출금하여 '손'에 쥐고 있어야 '내 돈'이 된다.
인생 경험치도 비슷하다. 그것을 받아 들이는 순간에서야 '내것'이 된다. 평가수익률이 100%던, 마이너스 50%던 출금하지 않으면 그것은 수익도, 손해도 아니다. 젊을 때 고생이란 그런 것을 의미했다. 실제 그것은 고생이라기 보다 '흔적'에 가까우며 그 흔적은 다음 경험에 아주 좋은 빅데이터로 작용된다. 뭐든 처음이 가장 힘들다. 두 번은 쉽고, 세 번은 누워서 떡먹기다. 고난이라는 것도 사실은 그런 류라고 볼 수 있다. 마치 자전거 타기와 같다. 처음에는 별거 아닌 걸로도 넘어지지만, 나중에는 '그때는 왜 넘어졌나'하고 이해하지 못할 순간이 오기도 한다. 19세에 수능이 끝나면 매해 점수를 비관하고 자살하는 학생의 뉴스가 뜨기 마련이다. 때로는 그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나,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깟 점수 따위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0대에 이별을 비관하고 자살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보면 그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나, 시간이 흐르면 별거 아니란 걸 알지 모른다. 30대에도 그만한 시련이, 40대에도, 50대에도, 그 시기마다 마치 비가 내리듯 피하지 못할 시련이 닥칠지 모른다. 그것은 없으면 좋으나, 없을 수 없다. 고로 내리는 비는 그냥 맞아야 한다. '다음 번에는 어떻게 대처해야겠구나'를 깨달았으면 나는 진일보한다.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문제가 발생한 생각과 동일한 수준에서는 결코 해답을 찾을 수 없다. 먼저 겪고 진일보한다면,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은 다음 수준에서 반드시 쉽게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