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스릴러'를 좋아한다. 그것을 싫어한다는 작가와 반대다. '공포'나 '스릴러'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실'에서 쉽게 느끼지 못할 감정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공포의 감정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어두운 밤, 골목을 걸어도 그닥 무섭지 않다. 그럴 일은 많지도 않을 뿐더러, 자주하는 농담으로 현실이 너무 공포스러워서 영화나 소설 쯤은 무섭지 않다. 아마 근래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면, '코로나 쇼크'로 코스피, 코스닥에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가 걸렸을 때라고 할 수 있겠다. 극현실주의이신 어머니가 야속했던 학창시절을 보냈다. 피는 속이지 못하는지 어머니의 그런 현실주의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공포영화를 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이렇다.
"저거 촬영은 어떻게 했을까?" 혹은 "주인공 연기 잘하네."
소설을 봐도 이렇다.
"글 잘쓰네." 혹은 "어떤 영화나 소재에서 영감을 받은 모양이네."
그러다, 극하게 몰입시키는 영화나 소설을 만나면 비로소 가슴이 두근 거린다. '폭풍이 쫓아오는 밤' 얇은 소설.
두께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소설은 늘어지면 집중하기 힘들다. 바쁘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 수 일을 한 주제의 책을 본다는 것은 도통 몰입하기 힘들다. 소설은 더더욱 그렇다. 내용을 전혀 모르고 읽어야 재밌다. 다른 책들보다 '소설'을 읽는 속도가 느린 편이라 최대한 얇은 책을 골랐다. 단순히 두께만 보고 골랐다. 몇 일을 가방에 놓고 다니다가 비로소 첫장을 읽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마지막 장을 덮었다.
지루할 틈이 없다. 몰아친다. 간혹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문체는 깔끔하며 구성은 군더더기 없다. 휘몰아치듯 후다닥 넘어갔다. 물론 이런 류의 소설 치고 책 제목이 '스포일러'를 담는 경우는 없다. '폭풍'이 몰아치는 재난 소설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읽었다. 역시 재난 소설은 아니다. 단순히 스릴만 추구하는 부류도 아니다. 김영하 작가는 소설에 작가는 무언가를 숨겨 놓지 않는다고 했다. 독자들의 해석 영역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다만 독자의 입장에서, 숨겨놓지 않았어도 숨은 걸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소설은 인간의 내면에 들어간다. 가족 간의 이야기도 나온다. 사람의 불행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지만 그 시작은 대부분 '가정사'에서 시작하는 듯 하다. 어린시절, 굉장히 평범한 가족에서 지냈다. 자기소개서에는 항상 같은 문장을 적곤 했다.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서, 어머니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책임감 있는 부모는 적어도 내 세상에서 절대적인 것이었다. 폭력적이거나 무책임한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설정은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만 존재한다고 여기곤 했다. 모든 가정이 우리 집과 닮지 않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늦게 깨달았다. 고등학교를 가며 다양한 친구를 사귀고 군대와 사회생활을 하며 내가 가진 가정사가 결코 평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사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에 감사함을 가졌다.
소설의 재밌는 점은 단순한 스토리 뿐만이 아니다. 등장인물의 내면 세계 때문이기도 하다. 소설은 현재진행형으로 쓰여지지만,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그런 현재진행형을 갖게 됐는지 현재완료형으로 설득한다. 과거 한순간부터 현재에 이어지는 설명으로 한 사람을 오롯하게 이해하게 된다.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도통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를 것 같은 인간 부류를 만난다. 그런 부류가 그런 부류로 탄생하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과거가 쌓여 있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각각의 사람들의 과거와 세계가 모두 만나는 것이다. 스치듯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다가 한 시점에 격렬하게 섞이며 또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소설, 영화,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다. 어떤 것을 볼 때, 가장 흥미있게 보는 것도 그런 것들이다. 전혀 관련 없는 등장인물들이 점차 친해지며 서로에게 친밀감을 갖게 되는 전개에 매력을 갖는다.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허준'을 보면 '허준'에게 사기를 치려고 했던 '구일서'와 '허준'과 함께 '용천'에서 올라온 '양태'라는 인물이 점점 친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 둘은 전혀 인연이 될 수 없는 존재들로 태어나고 점차 가까워진다. 그런 관계는 드라마의 내용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큰 희열을 만들곤 한다. 드라마 내에서 '임오근'이라는 역할 또한 '양태'라는 인물과 전혀 관련이 없다. 다만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그들은 점차 친해진다. 우연은 점차 인연이 된다. 가장 좋아하는 스토리라인. 최정원 작가님의 글은 처음 읽어봤지만 앞으로 자주 읽을 것 같다. 간만에 눈을 떼지 못하고 읽은 굉장히 재밌는 스릴러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