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 사로트(Nathalie Sarraute)는 20세기 중반 프랑스의 여류 소설가이다. 그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모든 독자들이 읽을 글을 쓰기란 불가능하다. 시인은 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위한 시를 쓸 수 없다.'
그녀의 말에 동감한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글이란 있을 수가 없다.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 좋아하는 계절과 싫어하는 계절이 있듯, 사람은 취향이 있다. 글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취향에 적합할 수도, 부적합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으려는 욕구는 당연한 일이다. 그런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때로는 의기 소침해하기도 하고,상처를 받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 받기'라는 바람만 놓아버리면, 받지 않을 상처를 쥐고 있다.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내려 놓아보자. '나와 나의 글이 누군가의 취향이 아닐 수도 있구나.' 하고 말이다.
비빔밥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빔밥 뿐만 아니라 밥에 섞이는 식단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장밥이나, 볶음밥, 카레라이스 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비빔밥을 해하려 들고 있는가 하면 그렇진 않다. 음식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부정적인 성격의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변덕이 심하고 남욕하는 사람을 별로 달가워하지도 않는다. 다만, 난 그들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다. 비빔밥은 그저 비빔밥으로 태어났고 그들은 그저 그들로 태어났을 뿐이다.
단순하다. 보통 좋아하지 않는 것이 '미움'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등식'이 아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의미에서 '부등식'을 의미한다. ‘좋아한다’의 반대가 미워한다’라고 생각 할 수 있다. 좋아하지 않는 건, 미워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다지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이다. 나의 글을 싫어하거나, 우습게 보는 사람도 있다. 간단하게 무시하자. 비빔밥을 싫어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세상에 비빔밥이 사라져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연히 비빔밥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이다.
나와 당신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누군가의 취향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좌절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의 취향이 아닐지라도 반드시 누군가의 입맛에 꼭 맞는 탁월한 맛일 수도 있다. 1%의 선택만 받는다고 해도 대한민국 50만 명, 세계 7천 만의 선택을 받는다. 그것은 적은 수가 아니다. 나는 초콜릿을 좋아한다. 어느 날, 외국에서 동거 동락하며 서로를 의지해가는 형제처럼 지내던 형이 있었다. 그 형과 나는 둘이 살았다. 어느 날,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특가로 행사를 진행하는 초콜릿 뭉치를 발견했다. 그때 나는 그 초콜릿을 잔뜩 사왔다. 그리고 그 초콜릿을 형도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수 일이 지나도 형은 초콜릿을 먹지 않았다. 수 일, 초콜릿을 가져가지 않는 형을 보면서, 양보하는 마음에 감동을 받았다. 다만 정말 단순하게 형은 단 음식이 싫다고 했다. 아주 오랫동안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봤다.
우리는 싫어하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을 더 경계해야 한다. 항시 좋아하는 감정은 피드백을 요구한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반드시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해 주기를 바란다. 그 욕구가 해결되지 않을 때 사람은 공격성을 띈다. 글이 많은 사람들의 입 맛을 사로잡는 다는 것은 대중성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인기 있는 연예인은 역시나 악플에 시달린다. 그것은 그만큼 관심을 받는다는 의미다. 관심은 때로 '무관심'보다 더 큰 독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말하면 이렇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미움'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이 '초콜렛'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더 많은 이해의 폭을 만든다. 다만, '사람은 그럴 수 없다'라는 왜곡된 시선과 아집은 오해를 만든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어렵다. 돌이켜 보면, 나 또한 모든 사람을 좋아하진 않는다. 모든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사람과 상황은 모두 그렇다. 그 반대쪽의 가능성도 언제든 열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내가 비빔밥을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누군가는 단순히 취향으로써 나와 내 글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꽤 많은 반복적 암시를 스스로에게 해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