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2년을 보내고 2023년을 맞이하며...

by 오인환


처음에는 어린이날이 아무렇지 않다가, 나중에는 생일도 별일 아닌 날이 됐다. 명절이나 크리스마스도 특별하지 않더니, '연초', '새해'라는 말도 새롭지 않다. 다짐이나 정리도 하지 않는다. 그냥 무미건조하게 일상을 보낼 뿐이다. 왜 그런고 했더니, 살아지는 느낌없이 사라지길 바랬던 2019년부터의 정신상태 때문인 듯하다.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오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발걸음을 빠르게 해 그곳을 달려나오는 것 뿐이었다. 빨리 달리면 앞만 보게 된다. 앞만보면 옆이나 뒤는 금방 잊어버린다. 살을 할퀴어 피를 내는 가시에도 아픈 줄 모르고 위협하는 위협에도 무감각해진다. 현실감을 상실한다. 상처를 헤아릴 사이없이 빠져나온 2022년은 그나마 터널 밖에 서 있게 됐다. 의사 직업을 가진 초면인 사람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이 났었다. 나를 괴롭히는 우울감에 '어쩌라고? XX' 하고 발악했다. 그러다보니 다시 단단해졌다. 이제 점점 현실감을 찾으며 2019년에서 세 걸음이나 도망 나온 자신이 뿌듯하다. 2022년은 2시간도 남지 않았다. 2시간이 지났다고 1년이 더 지나는 건 아니다. 그런 건 의미없다. 서력 1년을 A.D로 쓰던가. 그것을 번역하면 '우리 주님의 해(Anno Domini)'라고 한다. 서력 A.D 1년을 더 지나는 나에게 2022년과 2023년의 차이는 뜨거운 물에 차가운 물을 부었을 때의 경계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가 태어난 해를 기점으로 센다면서, 그리스도가 언제 태어난지 모른다는 인류사의 역설에 속아 주는게 맞는가 싶다. 새로운 해는 매해 (每해)와 매일(每日)은 사실 같은 말이다. 365일이 지나야 '새로운 해'가 오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이 '새해'라는 의미다.



별 의미 없는 인사차 질문을 받았다.



"새해 새롭게 생각하는 계획이나 다짐이 있나요?"



없다. 지난 학기에 배운 수업도 정리 못 했는데, 분위기에 취해 새 학기 계획을 짜는 것 같다. 굳이 따지자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봤다. 일단, 2023년에도 좋은 기회를 만나 출간을 하고 싶다거나 유튜브를 조금 더 활성화 시키는 정도일까. 영화 기생충을 보면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말이 나온다. 친구는 한 번 뿐인 인생, 대비와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길지 않은 지난 날을 돌아보니, 영화 대사처럼 인생 계획대로 되는 것 없다. 학창시절 겨울방학만 되면 생활계획표를 짜오라며 동그라미를 24칸으로 나눈 일정표가 숙제였다. 단 한번도 지켜 본 적 없고 가능할리 없는 숙제를 의미없이 제출하며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저걸 지키고 있겠지?'


이제는 동창생들 중에도 학교 선생님들이 많은 와중에, 그런건 개나 줘버리고 닥친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삶도 온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학교는 매해 방학마다


실패할 것이 뻔한 계획표를 작성하게 해서 자괴감을 만들어냈을까. 선생조차 지키지 못할 일정표는 왜 강요할까.



'복(福)'자를 살피면 제단 위에 술병을 올려 놓은 갑골문의 기원이 보인다. 신에게 복을 빌기 위해 '향'을 피우고 '술'을 올리는데, 고대 동양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향'과 '술'이 없으면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할 정도로 술과 향은 중요한 제물이었다. 향은 하늘을 의미하고 술은 땅을 의미했다. '음양'을 조화롭게 한다. 인간이 땅에서 정성을 다하면 하늘은 '복(福)'을 내려준다. 그것은 우주적 규칙이다. 오른쪽으로 던지면 오른쪽으로 날아가고, 왼쪽으로 던지면 왼쪽으로 날아간다. 과거의 업식은 보상을 받는다. '인과응보' 혹은 '과보'를 닮았다. '복(福)'은 하늘이 그냥 '옛따!'하고 내려다 주는 '고수레' 같은 것이 아니다. 댓가없이 달라고 구걸해서 받는 동냥이 아니다. 받고 싶은 게 있다면, 그만큼을 채워 넘겨 줘야 한다. 그것은 일종의 '에너지 총량'의 법칙을 고스라니 따른다. 우주에는 빅뱅 이후로 1g의 물질, 에너지도 새롭게 생겨나지 않았다. 모든 것은 그 모양을 바꾸며 영존한다. 관용적인 덕담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남발하고 때로는 듣기도 하지만, 과연 나는 '복(福)'을 받을만큼 '복(福)'을 지었는가. 의심해본다.



2022년 지나가는 해의 마지막 날에는 서점을 들렸다. 서귀포 '우생당'을 들렸다. 그곳에는 연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북적거렸다. 분명 술자리가 북적거려야 할 연말에도 사람들은 새로운 책을 구매하고 새 마음으로 신년을 맞는다. '하루키'의 책을 한 권 골랐다. 책을 좋아한다면 안들어 볼 수 없는 이름이지만, 벨벨 꼬여 있는 탓에 남들이 괜찮다고 하면 대세에 편승하지 않으려고 했다. 내심 굉장히 오랜기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오다가. 집어왔다. 2023년에는 그런 책들을 읽어보리라. 국부론, 종의 기원 등. 별거 없는 새해 다짐을 해본다. 2022년이 그냥 저냥 지나간다. 2023년도 그냥 저냥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그 기간에 꾸준히 나는 무언가를 읽고 쓰고, 활용해보고 생각해봤다는 것이다. 그 흔적을 온라인과 종이책에 남겼다는 사실은 무계획했지만, 계획보다 훌륭했다고 본다. 운이 좋게 때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할 수 있었다. 너무 온오프라인으로 너무나 훌륭한 사람들과 인연이 되기도 했다. 긴 터널을 빠져나와, 공포에 무덤덤해진 김에, 그냥 저냥 그 속도를 지키고 방향을 유지하면서 2023년을 지나가고 싶다. 공포에 질려 뛰쳐나오던 최초의 의도를 잊고 이제는 새로운 의미를 가슴에 두고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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