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소원을 이루는 공식_

Too good to be the best

by 오인환

"큰 배를 만들고자 한다면 배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대신,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라. 그러면 스스로 배 만드는 법을 찾아낼 것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생텍쥐페리는 '어린왕자'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기술과 방법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한계는 '작은 배'까지다. 큰 배를 만드고자 한다면 '기술과 방법'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은 '동기부여'다. 나를 움직이는 동기는 어디에 기원하는가. 외부에서 기원하는가. 내부에서 기원하는가. 그것은 중요하다. 해이해질때 쯤, 자기계발서 한 권 읽고 다시 불타 오르기를 몇 번을 반복하다보면, 동기부여 중독이 생긴다. 더이상 좋은 말과 기술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점점 더 자극적이고 기발한 생각만이 동기를 불러 일으킨다. 흔히 마약보다 더 중독적인 것이 엔돌핀이라고 한다. 뇌 속의 마약이라고 부르는 '엔돌핀'은 '아편'을 주성분으로 하는 '모르핀'보다 300배나 더 강한 진통 효과를 가지고 있다. 끊임없이 '모르핀'을 주입하는 것보다 웃으며 만들어내는 엔돌핀이 더 효과적이다. 외부에 의한 자극은 언젠가 한계에 도달한다. 언제나 자극은 내부에서 시작해야 한다. 행복을 찾는 방법도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어야하고, '성공'의 기준도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어야 한다. 아이를 깨끗하게 씻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씻도록 가르키는 것이고, 아이에게 쪽집게 과외를 붙여 줄 것이 아니라, 혼자 조용히 독서하는 취미를 붙여 줘야 할 것이다. 에너지의 원천은 언제나 내부에 있어야 한다. 아이을 성장시키는 육아 뿐만아니라, 스스로를 키우는 자기계발도 마찬가지다. 다른 이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거나,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벌거나, 다른 이들보다 더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움직일 것이 아니라,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스스로 더 높은 지위로 움직여야 할 내부적 동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Thought become things"

생각은 현실이 된다. 붓다는 지금의 모습이 생각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현재의 모습은 생각에서 발생한다. 생각은 내부에 있다. 변화는 외부에서 만들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내부에서 시작한다. 내부인 생각을 변화해야 한다. 내부 생각의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강한 동기부여다. 동기부여는 왜 만들어지나. '욕구'에 의해서다. 욕구는 왜 생기는가. 내부적인 결핍이나 과잉 현상을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 발생한다. 무엇이 과잉이고 무엇이 결핍인지는 본능적으로 알 수도 있으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모호한 심리 상태를 깨닫기 위해서는 진정 자신이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이 과잉 상태인지 파악해야 한다. 씻지 않은 아이에게는 '씻는 기술'을 익혀줄 것이 아니라, 씻지 않았을 때 발생할 질병의 위험성과 사회 생활 중 받게 될 시선을 알려 주어야 한다. 질병을 얻어보지 않은자나, 사회 생활을 필요로 하지 않는자는 아무리 씻는 법을 알고 있다 해도, 씻지 않는다. 사람의 감정은 파도처럼 위와 아래가 출렁거리며 전진한다. 고로 같은 위치에 있는 물이라도 언젠가는 위로 올라가고, 언젠가는 밑으로 내려가기 마련이다. 그처럼 충족해야 한다고 보는 최소한의 선을 '가치관'이라고 한다. 가치관은 고로 언제든지 바뀐다. 10대를 막 벗어난 시기, 대부분의 학생들은 머리를 길렀다. 염색이나 탈색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왜 그런가. 결핍된 부분을 채우려는 '욕구'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남성은 여성에게, 여성은 남성에게 끌리는 이유도 결핍된 부분을 채우기 때문이다. S극과 N극은 서로를 강하게 끌어 당긴다. 이처럼 모든 것은 끌어 당긴다. 결핍과 과잉은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겨 완전한 중립의 상태를 이루고자 한다.

세상의 모든 물질의 근원은 '원자'다. 원자는 중성자와 양성자,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양성자와 전자 사이에는 전자기력이 존재한다. 양성자는 전자를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이는 양성자가 +전하를, 전자가 -전하를 띄기 때문이다. 욕구란 무엇인가. 욕구란 이미 충족된 것에 기원하지 않는다. 양성자가 양성자를 밀어내고, 전자가 전자를 밀어내는 것처럼, 자석의 N극이 N극을 밀어내고, S극이 S극을 밀어내는 것처럼 이미 충족된 것에는 욕구가 생기지 않는다.

자, 이제 깨닫는다. 거기에 도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것이 충분히 결핍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해야 하는데...', '하면 좋겠는데...' 그 생각의 기원은 바로 이것이다. 충분하게 결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큰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는 망상을 하는 많은 이들. 좋은 성적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이들. 어떤 고통 속에서 잊어야 할 것들을 잊지 못해 괴로워하는 이들. 이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고통의 크기는 그 크기가 '견딜 수 있을 만큼'이기 때문이다. 때로 사람들은 '죽기보다...'라는 전제로 원을 말하곤 한다. 안타깝지만 실제 일부는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모든 것의 상위일 것 같은 '죽음'은 사실 최상위가 아니다. 죽어서도 도달하지 못하는 한계는 언제나 존재하며 고로 우리의 '욕구'는 그저 양성자가 전자를 끌어 당기고, 태양이 지구를, 지구가 달을 끌어당기는 것 같은 우주 규칙일 뿐이다. 더운 물과 차가운 물을 섞으면 언젠가는 미지근한 적정 온도에서 하나가 되듯 +와 -는 가장 합리적인 중립점을 찾는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남들이 원하는 것의 표본인지, 혹은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를 먼저 떠올려야 한다. '2020년' 전세계적 양적완화로 인해 너도 나도 자산투자를 통해 부자가 되는 꿈을 꾸었다. 세상에는 부자가 되는 노하우를 알려준다는 젊은 이들이 속속들이 등장하며 유행처럼 스타가 됐다. 이들은 어째서 어려운 시기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자산가격이 폭등하는 시기에 등장할까. 비슷한 욕심을 가진 이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남들이 설정한 표본이 유행처럼 번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중에는 절실하게 그것에 결핍을 느끼고 자연의 법칙처럼 움직이는 이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다.

"Too good to be the best"

(최고가 되기에는 너무 좋은 상태)

지금 현실이 그닥 나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원한다고 말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내면 깊은 곳에서는 만족한다. 변화를 싫어한다. 모두가 같은 것을 끌어당기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목성과 토성도 우주 공간에 둥둥 떠 있지만 달이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게 잡고 있는 것은 지구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커다란 질량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끌어당긴다. 17세기 천재 뉴턴은 말했다.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끌어당긴다. 그것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질량에 비례한다.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 얼마나 그것이 무거운지에 따라 모든 것은 저절로 끌어당긴다. 우주가 말하는 수학의 기하학적 원리이자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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