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법대로 하세요_백조와 박쥐

by 오인환


'법대로 하세요'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사용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중요한 문제에서 '사법'의 도움을 받고자 할 때 쓰일 때도 있다. 다만, 반드시 그런 상황에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법대로 하세요'라는 말은 되려, 법에는 저촉되지 않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쓸 때도 가능하다. 법률용어중에 '쌍벌죄'라는 것이 있다. 특정한 행위에 관련된 양쪽 당사자를 모두 처벌하는 범죄를 말한다. 대표적으로는 '뇌물죄'가 있다. 뇌물 쌍벌죄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모두 처벌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뇌물을 제공한 쪽에서도 처벌을 피하기 위해 혐의를 부인하기 때문에 양 당사자가 모두 쉬쉬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주로 정치인과 경영인 사이에 자주 발생하는데, 압박에 의해 뇌물을 건내면 일단 공범죄가 성립된다. 즉 피해자와 가해자가 혼재된 상황이 생긴다. 비슷한 일은 '성매매' 문제에서도 일어난다. 성매매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런 문제의 경우에는 양지화 되지 못하고 점점 음지화된다. 최근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가장 이슈가 된 내용이 하나 있다. 바로 '출근시간'에 대한 내용이다. 출근 시간이 9시라면 최소 10분 전에는 나와야 한다는 입장과 서류상 9시 출근이면 9시에 도착해도 된다는 입장이 대립했다. 이 이슈의 중심에는 '서류'가 있다. 서류상 출근 시간이 9시라면 8시 59분에 회사 출입문에 들어서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모든 것을 '법대로', '서류대로' 처리할 수만은 없다.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법치사회'이지만 그 기반에는 '종교', '도덕', '문화' 등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물론 그것에는 강제성이 없다.



10대 청소년이 5, 60대 노인에게 반말을 한다고 해보자.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실제로 10대 청소년이 노약자 석에 앉아도 법적으로 처벌되지 않는다. 여성 전용주차장에 남성이 주차를 하더라도 처벌조항은 없다. 쓰레기를 버리는 재활용 시설 앞에 주차를 하더라도 불법이 아니다. 10kg의 과일 상자에 과일이 10kg을 넣든, 상자무게를 포함하여 10kg을 맞추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는 상당하게 많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해도 괜찮냐고 묻는다면 그렇진 않다. 우리 사회는 '법'만으로 지탱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암묵적으로 만들어낸 '도덕'과 '규범'이 존재한다. 법이 없으면 '무법지대'가 될 거라로 생각하지만, 인간은 의외로 법이 규정하지 않은 다양한 규범들을 지키며 살아간다. 최근 다시 읽고 있는 논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정령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형으로 쳐내 가지런히 하면 백성은 처벌을 면할 생각만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예로 가지런히 하면 백성은 부끄러움도 알고 또 선함에 나아갈 것이다."


2000년이 지난 공자의 논어가 현대 사회에 반드시 맞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법이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실제로 '법'은 규정에 따라, 또 다시 재범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인물들을 사회로 내보낸다. 죄를 지은 것으로 보여지는 인물들에게 '무죄'를 선고하기도 하고, 억울하게 법에 저촉된 인물들을 심판하기도 한다. 인간의 죄와 벌에는 '법'이라고 하는 명확한 잣대가 필요하지만 그 잣대는 아이러니하게도 모호한 '철학'과 '이데올로기'로 만든다.



1984년 금융업자 살해 사건이 벌어진다. 용의자는 유치장에서 자살해 버린다.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2017년 불법 주차된 차안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피해자는 정의로운 국선 변호사인 시라이시 켄스케다. 이 두 사건의 진범이 모두 자신이라고 밝히는 인물이 등장한다. 두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등한 뒤 소설은 피해자와 가해자 자녀들이 해당 사건에 의문을 품으며 새로운 내용으로 전개된다. 소설의 내용은 이쯤 해둔다. 출판사가 소개한 정도의 내용 이외의 내용을 말하는 것이 다음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스포일러가 될 것 같다. 책의 제목은 '백조와 박쥐'다. 이름이 주고 있는 이질감은 읽고 나서 더 크게 다가온다. '선과 악', '흑과 백', '정의와 불의' 등 전혀 상반된 것의 나열이다. 살면서 비슷한 상황을 자주 보곤 한다. 우리는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갈구한다. 선을 권하고 악을 징벌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원하는 '정의'다. '법'은 이 '정의'를 향하고 있다. 다만 우리의 사법은 '권선징악'을 담고 있는가. 그것은 따지고 볼 문제다. 소설에는 교묘하게 죄를 피하는 질 나쁜 인물이 등장한다. 무례하고 인정머리 없으며 비상식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친다. 다만 그 행동은 교묘하게 법을 피하고 있다. 법이 정한 테두리의 죄를 교묘하게 피하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또다른 인물은 선하다. 그는 사회적으로 '정의'에 해당되는 일을 행한다. 그러나 앞 선 이와는 다르게 사회가 정한 법률의 테두리를 크게 넘어간다. 이 두 인물에 대한 사회의 평가는 과연 어떻게 내려져야 하는가. 인간의 죄와 벌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사회비판 추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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