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부끄럽고 감사한..._선물 받은 손글씨 엽서

by 오인환

에폭시 바닥시공 된 주차장을 밟았다. 바닥엔 눈 묻은 차가 세운 듯 눈뭉치가 있었다. 운전석 문을 열고 나왔을 때, 그것을 밟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밟았다. 값나가는 고급 구두가 흙 묻은 눈 위에 닿았다. 구두가 빈 공간을 밟을 때 나는 '또각 또각' 소리를 즐겼다. '또각, 또각'. 눈을 밟으면 '뽀드득' 할 값나갈 효과음에 호기심이 일었다. 허세 잔뜩 묻은 구두로 눈을 밟았다. 시선은 눈 위의 구두에서 주차장 하늘로 향했다. 구두가 눈을 기준으로 30미터나 밀려나 있었다. 넘어지는 육중한 몸뚱아리를 팔꿈치가 떨어지며 받았다.

'에헤'

아픔보다 먼저 찾아 온 것은 구두와 코트가 더러워 졌을 걱정. 녹은 흙눈이 옷에 스며들기 전에 재빨리 일어나야 했다. '재빨리'라는 부사가 재빨리 판단력을 흐렸다. 손과 발 중에 무엇을 먼저 써야하는지, 혼동이 왔다. 어물쩡 자빠진 모습으로 손과 팔을 허둥허둥댔다. 몇 번을 장난치듯 미끄러지다가 겨우 일어섰다. 열려 있는 차문을 닫았다. 주변을 돌아본다. 아무도 없다. 혹시나 싶어 CCTV 위치를 살핀다. 흙 묻은 구두와 코트를 손으로 턴다.

'아, 다 묻었네'

내 돈주고 제정신에 사지 못할 구두와 코트를 걱정했다. 멀쩡한 척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사방이 거울로 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자, 바로 혼자가 됐다. 아무일 없던 척 하던 '표정'을 지우고 '본래'의 찌질함으로 돌아갔다. 생각해보니 '코트' 밑으로 찧인 팔꿈치가 아렸다. 대충 느껴봐도 멍이 났을 법하다. 엘리베이터가 나를 혼자 가두고 위로 쏘아올리는 동안, 방금 전 모습이 반복재생 됐다.

일번, 아무 일 없기 전까지, 허세가 쩌는 표정과 기분.

이번, 불필요한 호기심의 행동

삼번, 넘어짐.

넘어짐 뒤에, 내 생각의 흐름은 내 젊은 시기를 닮았다.

사번, 옷은 멀쩡하려나.

오번, 쪽팔린다.

육번, 다시 아무 일 없는 척.

갇혀진 엘리베이터에서 혼자 진실의 표정을 드러내고 찌질했던 모습.

아주 짧은 5분의 시간에 내 젊은 시기가 담겨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럴 싸하면 그만이었다. 넘어지면 나보다 걱정된 것은 '체면'이었다. 일어서고나면, 넘어진적 없는 척 흉내를 낸다. 그리고 혼자가 됐을 때, 비로소 본래의 내가 된다.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대부분을 속이면, 딱 하나 속이지 못한 사람이 하나 남는다.

'나'

나만 제대로 속이면 그냥 없었던 것처럼 되는데, 꼭 혼자 있으면 그것은 들통난다. 그 기반에 있던 찌질함이 여과없이 드러난다. '드르렁' 소리를 내며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생각했다.

'이건 오늘 글감이 되겠구나.'

아주 사적인 글이 모였다. 어느새, 찌질함을 함께 관찰해 주는 분들이 생겼다. 괴로워했거나, 고민했거나, 창피한 일들, 슬펐던 일들, 아주 개인적인 일들과 생각들도 오롯이 혼자된 시간에 기록했다. 나조차 부끄러워지는 그것을 좋게 봐주신다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손편지는 정말 쉽지 않다. 연애할 때는 간질 거리지도 않던 것이, 사적인 용도로 쓰는 손글씨는 어딘가 간질거렸다. 손가락 열 개가 감정없이 '투닥'면 무언가 정돈된 옷을 입은 것 같다. 민낯을 드러낸 것 처럼 손글씨가 벌거 벗어지는 느낌이라, 증정하는 책에 간단한 메모도 못해 드린다. 그러나 보내는 것이 힘든 만큼, 받는 것에 감동이 있다. 그냥 쏟아내는 글을 읽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가슴벅차다.

*모자이크는 했지만, 불편하시면 사진은 내리겠습니다. 선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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