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BBQ를 갔다. 자리를 잡고 맥주 500cc를 시키고 아이들 동화책을 읽었다. 한참 재밌게 읽는데, 아이가 물었다.
"아빠, 여기 뭐라고 써 있는거야?"
옆을 봤더니 '핑킹현상'이 적혀 있었다. '핑킹현상'이라고 읽어 주었다. 아이는 '핑킹현상'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10년의 해외 생활이 이런 좋은 점이 있나보다.
'Pinking phenomenon'일까...
Pink라는 분홍색은 명사지만 동사처럼 쓸 수 있다. Pink만 유별나게 그런 건 아니고, 원래 동사는 명사의 성질을 담은 동작으로 쓰인다. 'Google'처럼 말이다. 어쨌거나 동사에 'ing'를 붙여서 현재분사 즉, 형용사화 했다.
'붉은 현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 핑킹현상 이라니.. 차라리 영어로 써놨다면 조금 나았을까. 일본인들이 화장실을 '토이레(トイレ)'라고 부르는 걸 보고 얼굴이 간질 거렸는데, 아는 형은 막걸리를 'Korean rice wine'이라고 바꿔 불렀다. 소주는 Korean Vodka이다. 가장 황당한 것은 김밥이다. 김밥은 Korean Sushi다. '초밥'을 Sushi라고 표기할 요량이라면 차라리 'Kimbab'이 나았을 성 싶다.
호떡이 Korean Pancake, 설날도 Chinese New Year다. 한자를 쓰면 조금 유식해 보이던 중세 사대주의 시절을 답습하여, 무조건 영어를 쓰고 보자는 식이다.
이처럼 계층이나 직업, 성별, 교육수준에 따라 언어를 분화하여 사용하는 것을 '사회방언'이라고 한다. 어릴 적 동네 의사선생님은 분명 '목이 아파요'라고 말했는데, 영어 같은 걸 휘갈겨 쓰셨다. TV에서 전문가라고 폼잡고 나오는 인물들은 어려운 말을 굉장히 많이 쓴다.
"고기가 빨간 건, 근육세포에 있는 단백질 때문이에요."
읽을 사람이 읽을 수 있어야 하는데, '핑킹 현상'이라니...
먼저 읽었을 때는 '핑킹' 이라는 단어가 '욕'으로 보였다. 오죽하면 핑크(Pink)라는 이처럼 쉬운 말도 전문용어처럼 만들어 써야 하는 걸까. 차라리 '핑크화 현상'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듯 싶다.
영어를 쓰면 조금 더 유식해 보이는 지 모르겠지만 굳이 바꿔 쓰는 영어 용어들은 사실 생각보다 유치한 수준인 경우가 많다. 이게 얼마나 유치해 보이는지 알고자 하면 일본어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본어에서도 '핑크현상'이 있다. 바로 '삥낑구 겐쇼(ピンキング現象)'다. 꽤 없어 보인다.
유학 전, 어학연수 시절에 어학원에 일본인 한 명과 한국인 여럿이 있었다. 한국인들은 일본인 친구에게 토요일에 무엇을 하냐고 물었다.
일본인이 영어로 대답했지만, 한국인은 그것이 일본어냐고 되물었다.
일본인은 그것이 영어라고 말했다.
한국인들은 일본인의 발음을 비웃었다.
일본인은 말했다.
"싸타데~"
한국인들이 일본인의 발음을 한참을 비웃다가 교정해 주었다.
"노노!! 쎄.터.데.이"
그 모습을 보고 원어민 강사가 '빵'하고 터졌다.
없어 보인다. 영어로 유학하고 현지에서 사회생활까지 10년을 머물다 온 사람으로서 이런 식의 외래어는 너무 없어 보인다.
상대가 이해해야 대화다. 유시민 작가의 말대로 어려운 말을 쓰는 사람은 '남을 설득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그냥 언어의 목적을 '소통'이 아니라 '치장'에 쓰는 사람이다. 유시민 작가는 이런 사람을 조심하라고 말하며 '사기 치려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핑킹 현상이라니...'
집에서 검색해보니 꽤 많이 쓰는 말인 것 같은데, 어쩐지 과하게 영어를 쓰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보이며 손발이 오그라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