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사랑하지 않는 것이 나의 사랑이란다

별빛 너머의

by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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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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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지은 '풀꽃'의 저자 '나태주' 시인이다.

풀꽃은 2012년 광화문 글판에 실린 이후 시민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유명해졌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꽤 유행하여 관련 패러디도 적잖게 보게 되는 시다.

개인적으로 '풀꽃2'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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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알고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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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은 1971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서울신문의 신춘문예 시인 부분에서 '대숲 아래서'라는 시를 당선작으로 시인의 삶을 시작했다.

이 시는 사랑하던 여자에게 프로포즈를 거절 당한 후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쓴 시라고 한다. 인간의 언어는 완전하지 않아서 대상을 정확히 표현하기 힘들다.

'바다'라는 대상을 표현한다고 해보자. 색은 '파랑'이고 맛은 '짜다'다고 할 수 있으나, 이것은 바다의 단면적 모습이지, 바다가 아니다.

아무리 문자수를 늘려도 인간의 언어로 바다를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로 글자수가 곧 본질을 담는 것은 아니다. 수십 권의 책보다 한 장의 사진이나 그림이 더 많은 것을 표현하듯, 시는 함축적이고 명료하여 두꺼운 사전보다 더 명료하게 대상을 표현하기도 한다.

'산', '바다', '들'보다 더 모호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감정'이다. 감정은 '잔잔'할수도 있지만, 그것이 출렁거리면 굉장히 다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의 감정은 애별리고(愛別離苦)에서 크게 흔들린다.

시와 노래가 애별리고(愛別離苦)를 노래하는 것은 그로써 당연하다. 자연에서 '노래'는 '사랑'과 굉장히 연결되어 있다. 새들은 '구애'를 위해 노래를 한다. 노래를 못하는 꽃은 '향'으로 구애를 한다. 향과 노래가 사랑을 중심으로 닮았다.

향기라는 시는 이처럼 '시'와 '향'이 '사랑'을 닮았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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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라 내 앞에 잠시

예쁘게 앉아 있던 꽃

가서는 잘

살아라

더 예쁘게 살아라

네가 남긴 향기만으로도 나는

가득한 사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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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시와 닮았다. 인간의 노래 역시 '사랑'을 주제로 한다. 나태주 시인의 시가 '사랑'을 노래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래를 뜻하는 두 가지 '곡'이 있다. 흔히 말하는 교향곡이나 악곡을 말할 때 쓰는 곡(曲)과 '통곡'처럼 크게 울면서 부르짓는 노래도 곡(哭)이다.

두 곡은 음차할 때, 둘 다 '곡'이고 '감정'을 극대화하는 노래 방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의 시에 '이제 사랑은'은 이 두 곡의 교차점에 위치하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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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까 봐 겁난다, 너

언젠가 네가 미워질지도 모르고

헤어질지도 몰라서

미워할까 봐 겁난다, 너

미워하는 마음 옹이가 되어 내가

나를 더 미워할 것만 같아서

이제는 너

사랑하지 않는 것이

나의 사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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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감정은 너무 복합적이라 '사랑하기 때문에' 이별하는 경우가 있다. 현실적인 사람들은 그것이 모순이라고 말하지만, 사랑을 이유로 속박한다면 '자녀'는 언제나 '부모'에게 독립할 수 없다. 어떤 관계도 모순처럼 물고 물리며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존재하고 감정이 존재한다. 고로 때로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누군가의 사랑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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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다니면 사람의 길이 생긴다

바람이 다니면 바람길이 되고

물이 다니면 물길이 열린다

쥐나 새가 오가면

쥐나 새들의 길이 생기는 것처럼

마음이 오가면

마음길이 열린다

얘야,

제발 비켜 있지 말거라

봉숭아 꽃물 들인 손으로 가을꽃 꺾어 가슴에 안고

기다리지 않아도 좋다

빈손이라도 좋고

찡그린 얼굴이라도 좋으니

내가 찾아가는 마음 길 맞은 편

허전하게 비워 두지는 말아다오.

사랑이 들어 찰 수 있도록 언제나 마음을 열고 그릇을 비워 두는 것은 중요하다. 완전히 그 마음이 닫혀 있도록 매말라 있다면 그 길은 스스로도 나다지니 못하지만 상대에게도 없는 길이 된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소설을 읽고 노래를 들으며 자신이 나갈 수 있고 상대가 들어 올 수 있는 감정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 좋다. 시는 왜 읽는가, 그 자리 오고 갈 수 있도록 길을 갈고 닦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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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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