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잔 두 번째 이야기 1

2-1 남영동 달잔

by 이세

지하철 역에서 내려 “달잔”으로 출근하는 혜진이 발걸음이 바쁘다. 초봄의 공기에 취해 달리기를 너무 오래 해버린 탓에 벌써 하늘이 오렌지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잰걸음을 걷다가 꽃집 앞에 가득 담긴 프리지어의 노란 무더기에 멈춰 섰다.


‘프리지어가 벌써 나올 때가 되었나.’


늘 꽃보다는 야채를 사는 것이 익숙한 그녀지만 봄을 당겨오는 프리지어는 놓칠 수 없었다. 향긋하고 노란 프리지어 한 다발을 안아 들고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했다.


“달잔”은 남영동 뒷골목 건물 지하에 자리 잡았다. 처음 가게 자리를 알아보러 다닐 때는 노포들만 가득한 덕에 가겟세가 제법 저렴했었다. 개발의 바람인지 최근 몇 년 사이 남영동에는 전국구로 유명한 고깃집과 맛집들이 들어섰다. 혜진은 고소한 삼겹살 냄새를 풍기는 벌써 대기줄이 길게 늘어선 가게를 지나 “달잔” 입구에 도착했다. 딱 맞춰 오레오가 마중하듯 얌전히 앉아 있었다.


“야옹”


“오레오, 나 기다렸어? 배고파서 나왔니?”


내려진 셔터를 올리고 계단을 내려가 가게 문을 열었다. 약간의 지하의 냄새, 어서 분주히 움직여 밤사이 내려앉은 적막의 냄새를 내보내고 술과 사람의 냄새로 채우는 일이 “달잔” 오픈 전 혜진이 하는 일이었다. 가볍게 쓸고 닦으며 먼지를 털었다. 몇 개 안 되지만 가게 안에 테이블도 반짝이게 닦았다. 가게를 열면서 한 장 한 장 혜진이 소중히 모아 온 LP 장의 음반들도 말끔히 먼지를 털어줬다. 오레오에게 연어맛 츄르를 한봉 까주고 혜진 본인을 위해 초콜릿 향이 가득한 원두를 꺼내 커피를 내렸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고 손님들의 허기가 채워지고 나서야 “달잔”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은은한 “달잔”의 조명빛을 흩트리며 키가 큰 한 남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혜진이 밝게 인사하며 맞이했다. 처음 온 듯한 남자 손님은 아직은 어색한 듯 Bar 자리를 피해 홀에 놓인 테이블 중 가장 작고 벽에 바짝 붙은 곳에 앉았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식사는 하셨나요?”


살갑게 말을 붙이는 혜진을 경계하듯 말을 아끼며 키 큰 남자는 주문을 했다.


“맥주 하나 주세요.”


혜진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혜진은 노란색의 도톰한 접시를 꺼내 담백한 크래커와 치즈를 담았다. 그리고 왜 인지 모르게 빈속으로 들어온 거 같은 남자 손님을 위해 빠르게 계란 프라이를 두 개 부쳐 함께 내어주었다.


“요기 먼저 하고 계시면 음료 금방 드릴게요.”


그리고는 빠른 손놀림으로 얼음잔과 병맥주를 준비했다. 금세 “달잔”이 사람 사는 냄새로 가득해졌다. 서빙을 마치고 혜진은 오늘의 선곡을 위해 신중히 LP 판을 골랐다. 처음 온 길쭉한 손님 때문인지 오래된 이문세의 앨범이 그녀의 손에 잡혔다. 미개봉 한정판이라며 중고로 귀하게 구한 음반이었다. 할 말을 하지 못했다는 슬픈 가사는 젊은 이문세의 농담 같은 통통 튀는 음색에 신나게 튀어나오고 있었다.


두 번째 트랙의 트럼펫 소리와 함께 입구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며 곧이어 두 명의 손님이 고개를 내밀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저희 Bar에 앉아도 될까요?”


“네, 그럼요. 편히 앉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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