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는 최악의 도피
직장인에게 휴가는 생명수와 같다. 신입사원이 첫 입사 후 1년 근속을 완료하면 누구나 15일 연차휴가가 새로 발생한다. 물론 입사 첫해는 전달에 개근할 경우 다음 달마다 하루씩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10년을 장기 근속 했다면, 그 후부터 매년 1일씩 사용가능 한 휴가 일수가 늘어난다. 최대 25일까지 늘어나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
근로자들은 휴가에 목말라한다. 15일을 어떻게 사용할까? 보통 여름휴가 3일은 대부분 고정적으로 사용한다. 집안의 대소사가 생기면 어쩔 수 없이 휴가를 쓴다. 샌드위치데이 때 눈치 보면서 휴가를 쓰고 해외여행을 간다. 샌드위치데이란 공휴일이 연속되지 않아서 중간 날짜에 출근을 해야 하는 경우를 말한다. 화요일이 공휴일이라면 월요일 휴가를 내면 토요일부터 화요일까지 4일을 내리 쉴 수 있다.
잠시 직장을 떠나 자유로운 곳에서 마음을 치유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는 휴가는 직장인의 특권이다. 근로자에게 주어진 법정 휴가는 회사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휴가를 쓰면 안 되는 기간이 있다.
직장에서 가장 힘들 때 휴가를 쓰면 안 된다.
반복되는 업무와 계속 쌓여만 가는 요청서가 나를 질식시킬 때 휴가를 쓰면 안 된다.
과도한 업무가 한 달 이상 지속되어 체력이 고갈되었을 때 휴가를 쓰면 안 된다.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짜증으로 다가올 때 휴가를 쓰면 안 된다.
가장 힘든 시간에 휴가를 다녀온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과도한 업무로 짓눌려 체력이 고갈되면 마음이 깨지기 시작한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작은 일도 크게 보인다. 마음이 버틸 힘이 없으면 실제 업무가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경우가 많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계속 일이 쌓여가면 짜증만 나고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워진다.
이때 휴가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휴가는 미봉책일 뿐이다. 그 마음의 상처를 후벼 파고 있는 대상인 그 일은 휴가를 떠나도, 휴가를 다녀와도 그대로 나를 기다리며 남아 있다.
그 일을 피해 긴 휴가를 다녀오면 마음이 프레시해졌음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은 업무 책상에 앉자마자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그래도 쉬고 왔으니 동료들에게 생기 넘치는 모습을 보이려 애쓰지만 마음은 다시 이전 상태로 1초 만에 돌아와 있음을 모두 다 알고 있다.
업무에도 관성이 존재한다. 어렵고 힘든 업무는 더 큰 관성이 지배하고, 작은 일은 작은 일대로 관성이 존재한다. 업무에서 오는 압박감이 크면 클수록 마음은 상해 간다. 잠시 자리를 피한다고 그 마음이 치유되지 않는다. 마음의 상처는 그 업무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회사로 휴가를 떠나는 것이다. 정말 출근하기 싫은 날 일하지 않기로 한다. 회사에 출근해서 업무를 하지 않기로 한다. 중요한 일은 손도 대지 마라. 서류더미가 쌓인 책상을 정리하고, 오랫동안 미뤄 왔던 아주 사소하고 쉽게 할 수 있는 일 한두 가지를 처리하면서 하루를 빈둥빈둥 보내는 것이다. 그날 부득이해야만 할 일이 있다면 완벽이 아닌 70% 까지만 완성도를 유지하고 끝내라. 30분씩 업무를 나누어 수행하고 일이 끝나지 않더라도 딱 그 시간까지만 하고 그만두는 것이다. 오늘 나는 회사로 휴가를 나온 것이다. 절대 회사에서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충대충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진다. 뭉개고 있던 엄청나게 보였던 일들을 대충대충 분석해 보면 별거 아닌 경우도 많다. 선배를 찾아가 힘든 업무에 대해 가벼운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큰 힘이 된다.
회사에서 보내는 휴가를 사용했다면 두 가지를 얻을 수 있다. 나를 짓누르는 것의 실체를 정확히 볼 수 있게 된다. 내가 피하고 싶고 안 하고 싶은 일의 실제가 객관적으로 보인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뿐, 실제는 별 것 아닌 일일 수 있다. 둘째는 업무의 관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휴가를 떠나면 일은 멈춘다. 다시 일을 시작할 때 훨씬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어렵고 힘든 일일수록 에너지를 분배하며 속도를 관리하되 끝날 때까지 멈추지는 않게 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 무지막지하게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면 ,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면 휴가가 아니라 당장이라도 퇴사해야 한다. 퇴사는 직장인에게 주어진 최고의 찬스 카드다. 그 카드 사용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카드를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 내가 그토록 고통받고 있는 일을, 어떤 사람은 콧노래를 부르며 쉽게 쉽게 처리하고 있을 수 있다. 단순히 능력을 키우면 해결될 일 때문에 나는 그토록 고민하고 힘들어 할 수 있다. 일이 어렵고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그 일을 대하는 마음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모든 일이 심각하고 힘들고 버겁게만 보인다. 당면한 일을 단칼에 해결하려는 조급함이 마음을 더 힘들게 만들 수 있다.
상한 마음을 되살리는 방법은 그 일을 해결하는 일 밖에는 다른 처방전이 없다. 힘든 일일수록 잘게 나누고 주변 동료들과 연대해서 장기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지혜를 쌓아야 한다. 정말 힘들면 퇴사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마지막 보루가 있다. 마음이 상처받지 않고 , 여유를 잃지 않는 것이 슬럼프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