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금택 Feb 20. 2024

둔촌주공 말고, 옆집 빌라는 얼마?

대출은 양면성이 있다. 

1950년생 아버지는 빚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셨다. 우리집은 오래전부터 빚,부채라는 말은 금기어다. 평소에도 부채가 전혀 없으셨다. 내가 대학1학년때, 어쩔 수 없이 한일은행에서 대출을 받으셨을 때가 있으셨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대출을 상환하기 위해 애쓰시던 아버지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아버지에게 부채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 호환 마마와 같은 무시무시한 놈인 것 같았다. 부채에 매우 엄격한 부모님을 보고 자란 나도, 젊은 날엔 가능하면 부채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신용카드도 부채라서 현찰을 많이 사용했다. 누구에겐가 한번쯤 얻어먹으면 그걸 꼭 되갑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 잡혀 사는 쫌생이 중에 쫌생이였다. 



결혼을 하고 부동산 투자를 하고싶었지만, 선뜻 시작하지 못했던 것도 부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어쩌다가 초보자인 주재에 다가구 주택을 2억4천쯤 주고 매수했다. 내 돈이 많이 들지 않았던 이유가, 세입자가 무려 6가구나 되었다. 보증금이 많이 끼어 있어서 내 돈은 겨우 4천만원 정도 투입했던 것 같다.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 2억에 대한 압박감이 너무나 컸다. 임차인들이 한꺼번에 집을 빼달라면서 달려드는 악몽을 심심치 않게 꿨다.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데 그땐 왜 그리 떨었는지.   

2년 을 억지로 버티고 2억7천만원에 팔았고, 보증금 ,세금 제하니 6천정도 손에 잡혔다. 곧바로 1억5천짜리 빌라를 매수해서 9천만원 대출을 받고 6천을 투자했다. 다가구 좁은 곳에 살다가 빌라로 이사를 하니 대궐이었다. 무엇보다 2억에서 9천으로 줄어든 대출금액이 새가슴인 나를 안정시켰다. 이사간 빌라에서 1년쯤 살다가, 주변에 내가 살고 있는 빌라 보다 훨씬 입지와 구조가 좋은 빌라가 같은 가격에 나왔다는 걸 알았다. 나는 서둘러 살고 있던 빌라를 1억6천에 팔고 손에 7천을 가지고 1억5천짜리 빌라에 이사를 했다. 대출은 이제 8천이 되었다. 나는 1년만에 이사를 하고 유레카를 외쳤다. 


한번 이사에 1천만원씩 남다니, 

이걸 계속 반복할 수 있다면, 대출을 모두 갚을 수 있다.



시장이고 뭐고 전혀 모를때였는데, 다행히 운이 좋아 이 전략이 통했다. 1천만원 정도는 시장가 보다 저렴한 물건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1년에 최대 4번까지 이사를 다녔다. 언젠가 부터는 이사짐을 풀지도 않은채 최소한의 옷가지와 식기만 꺼내놓고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한참 공주대접을 받을 꺼라 기대하고 시집온 와이프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이사를 한번 할 때 마다 대출금액이 줄어들어 납부할 이자금액이 작아졌다. 우리는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기뻐했다. 


빌라 이사 전략으로 재태크 같지도 않은 재태크를 3년쯤 이어가다가 결국 빌린 대출을 모두 상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제 내가 매수한 집으로 이사를 가지 않고도 투자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의 실거주 주택 은 그대로 유지한채, 저가 빌라를 발에 지문이 없어지도록 찾아 다녔다. 

급매를 잡기위해서는 직장인만이 가진 최고의 무기인 마이너스통장을 백분 활용해야 한다. 좋은 기회는 시간을 조건으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대출로 우선 계약금을 치르고, 임대를 해야 한다. 부채를 최소화 하려면, 임대 보증금을 최대로 높여야 한다. 나는 이때부터 은행과 내가 경쟁관계에 있다는 것을 깨달 았다. 가격대비 가치가 높은 빌라는 임대보증금이 높아 내가 부담해야할 이자가 줄어들지만, 임대보증금이 낮은 물건은 부담해야할 이자가 높아진다.


빌라왕 때문에 빌라시장이 완전 박살이 났다. 그래서 빌라투자 사례를 쓰기도 부담스럽다. 빌라에 투자하라는 의미가 아님을 알아주시기 바란다. 하지만 언젠간 빌라시장도 반드시 살아 날것이라  믿는다. 지금 막 사회 생활에 내동댕이 처진 신혼부부께, 나와 같은 무식한 방법으로 재테크 하란 말은 절대 아니다. 지금은 그런 시기도 아니고, 그런 세법적인 환경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N포자분들에게 질문 드리고 싶은 것은 당신이 포기했다는 아파트가, 뉴스에 나오는 10억짜리 신축아파트가 아닌지 , 당신이 포기했다는 꿈이 어느 날 뚝 떨어진 1억짜리 복권은 아닌지..


시장엔 화려하고, 비싼 투자물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그릇에 맞는 물건을 찾고, 자기 능력에 맞는 돈을 융통해서, 자기 능력에 맞는 수익률을 조금씩 조금씩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 투자자가 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처음 1천만원 수익을 각고의 노력끝에 얻었을때의 희열을 느끼면서, 곧바로 한방에 1억을 벌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대신 와!! 이렇게 열번을 할 수 만 있다면, 지금처럼 시장이 조금씩만 올라준다면 , 작지만 안정적인 투자가 가능하겠구나 는 시장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부채는 아주 민감하게 조절하고 항상 감시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나의 모든 것을 순식간에 파괴 할 수 있는 위험한 야생마와 같다. 하지만 내 능력과 크기에 맞는 망아지를 골라 잘만 다스릴 수 있다면 , 부족하고 능력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충분히 자유롭게 타고 달릴 수 있게 된다. 

늙으신 아버님께 나의 대출총액을 말씀 드릴 순 없지만, 아버지처럼 대출 스트레스로 밤잠을 설치지거나, 상환의 압박 때문에 다 익어가는 밥솥을 열지는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투자는 운일까 실력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