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금택 Feb 21. 2024

유단자 필살기

지겨움을 극복했을 때 비로소 프로가 된다.

하루하루 지옥 같았다. 회사 가는 게 너무 싫어 지하철이 펑크 나기를 바랐다.

선배에게 눈치 보이고, 부서장이 무서워 꾸역꾸역 출근과 퇴근을 반복했다.

어느덧 회사생활이 습관이 되어, 내가 회사에 출근하는 것인지, 회사에서 집으로 출근하는 것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모든 업무를 알고,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와 그 뒷배경까지 알게 되었을 때, 정말 지겨웠다. 어제 하던 일을 오늘 하고, 작년에 했던 일을 올해 또 한다. 같은 일을 완벽하게 해야 할 때, 차라리 다채로운 고문을 당하는 것이 더 쉬울 꺼라 생각도 했다.

그 지겨움 뒤엔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무엇인가 한 가지를 20년쯤 반복해 보라. 기나긴 지겨움을 지겨움으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견뎌 냈다면,


비로소 정확한 오늘을 볼 수 있게 된다.

"오늘" 너무나 평범한 말에 실망했을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을 완벽히 통제했다. 업무는 막힘이 없었고, 어려움에 직면한 직원의 복잡한 문제도 해결해 주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했고, 불필요한 일은 제거했다. 내가 수행하는 프로젝트는 확률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건조하고 지겹고 변함없이 반복되는 일을 완벽히 통제할 때, 늘 느끼는 지겨움 끝에 오늘을 느낀다.


신입 때 느꼈던 하루는 두려움과 설렘 이 뒤섞인 월급날에 포함된 한 달의 하루였을 뿐이다. 긴 프로젝트 기간 중의 하루였으며, 부장님의 하루였고, 조직계획 중의 일부인 하루였을 뿐이다.

코드 로직이 떠오르지 않고, 잘못 만든 코드가 무한루프에 빠져 원인을 찾느라 밤을 꼬박 새웠을 때는 하루가 없기도 했다. 악독한 선임의 괴롭힘에 밤늦게 야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혼자 마시는 깡 소주가 젊은 날의 끝나지 않는 하루였다.

의미 없고, 힘든 하루하루가 쌓이고 1년이 가고, 어렵게 어렵게 대리, 과장을 거쳐 차장 부장으로 승진했다. 기쁨과 보람을 느낄 겨를도 없이 쏟아지는 일거리들과 관리해야 할 업무 때문에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 프로젝트만 끝나면 사표를 내야지, 이번 고비만 넘기면 멋지게 사직해야지. 손뼉 칠 때 떠나는 거야. 지금 도망치면 동료들이 많이 힘들 거야…, 딱 10년만 채우고 그만두자. 이제 그만해도 되지않을까.


직장은 노예생활이며, 절대 직장생활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래서 시작도 하기 전에 도망가고, 중간에 포기하고, 비겁하게 태업하다 잘리고, 다들 그러면서 내 곁을 떠났다. 함께 입사했던 입사동기가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 다른 회사로, 그다음 또 다른 회사로 5번까지 기억하다가 포기했다. 대부분 다른 회사에 희망을 품고 달려가 보지만 별거 없는듯 하다.

나름 신선한 퇴사는 사업하겠다고 나서는 후배가 멋있어 보였다. 나도 언젠간 멋지게 닭집 차려 퇴사하려 했다. 하지만 회사밖으로 나가는 순간 전장터에 소총도 없이 최전방에 선 이등병처럼 총알받이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 슬그머니 굳게 쥔 주먹을 펴기도 했다.




지겨움을 지겨움으로 인식하지도 못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 아주 긴 시간 동안 지겨움을 견디고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오늘 하루는 평범하고 어제와 같은 패턴이긴 하지만 , 내가 원하는 모양과 내가 사용할 수 있는 크기로 만들어, 내 의도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지겨움은 운이 작용할 틈이 거의 없게 되어 단조롭고, 외생변수가 튀어 들어오더라도, 오늘을 완성시키는데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될 때 느끼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둔촌주공 말고, 옆집 빌라는 얼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