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세. 이제야 소질을 발견하다니. 고등학교 때 시 동아리에 들어갔다. 시인 선생님이 지도하는 동아리에서 나름 글 기교를 부리면서 축제 때 시화전을 하고 같은 또래의 남자애들이 달아주는 꽃에 취하며 나는 시인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대학원서를 쓰려고 담임과 상담을 할 때 '국문과'에 들어가겠다고 하니까
'음... 네 성적에는 이 과도 가능하겠다.'
이러시는 거다. 그게 '국어교육과'였다. 그래서 평생 밥 벌어먹게 해 주신 그 키 크고 마른 나이 든 남자 선생님. 아마도 퇴직하셨겠지. 너무 착한 건지, 자기 생각이 없었던 건지 그냥 거기로 갔다.
대학에 가서도 읽고 싶은 책은 열심히 읽었지만 전공을 파는 학구적인 학생은 아니었다. 시험 치기 직전에만 대충 하니까 성적은 안 좋았다. 그런데 반에서 1등 하는 아이가 있었다. 항상 맨 앞에 앉아서 노트 필기를 진짜 잘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전공서적도 복사해서 사용했다. 집안이 어려웠던 건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안 어려운 애도 옷은 사도 전공책은 복사하는 걸 봤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책값은 아깝지 않다. 돈을 버는 목적 가운데 하나도 책을 맘껏 사는 거다. 그런데 주변에 지인들 중에는 책값이 무지 비싸다고 생각해서 안 사는 사람들. 도서관에서 꼭 빌려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후 시를 가끔 써서 공모하였으나 후드득 다 떨어졌다. 소질이 없다. 누군가 '40' 이후에 글을 쓰는 것이 수필이다. 그래야 삶을 관조하면서 쓸 수 있다. 이런 얘기를 듣고 40을 기다렸다. 그런데 40대는 너무나 살기 바빴다. 그래서 50이 되었네. 이제 퇴직하고 남는 건 시간밖에 없다. 일 하느라 못 읽은 책을 마음껏 읽고 이제 글을 써야겠다고 시작한 게 수필이다. '난 시에는 재주가 없어. 수필로 상 받은 적은 있잖아' 하면서 떠오른 게 중학교 때 절에서 백일장을 했는데 그때 상 탄 게 떠올랐다. 중, 고 시절에 학교에서는 왜 나한테 상을 안 줬지?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 잘하는 애들이 글도 잘 썼다. 유독 맨날 받는 애들이 있었다. 그때는 걔들한테 밀리고. 상을 받는 아이는 기가 살지만 상을 안 받는 아이는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게 상이다. 모든 공모상들도 그렇다. 상이 없어져야 해. 최소한 학교에서는.
그래도 시를 사랑하는 마음은 아직도 넘쳐서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유명 시인들의 시를 베끼게 했다. 각 시인별로 4편씩. 김영랑, 김소월은 여자인 줄 안다. 중1 아이들 입에서 '백석' 이란 말이 나오면 깜짝 놀란다.
'오, 대단한데? 백석을 알다니?'
이러면서 '오늘은 정지용 시 써보자''다음은 작가들을 조사해 보자''글씨도 예쁘게 써 보자'
이렇게 해서 시집을 만든다.
'니네가 만든 모든 시집을 전시하겠다. 이번 축제에. 쪽팔리는 건 자기 몫이다. 그러니까 예쁘게 잘 만들어라.'
아이들은 시를 베끼고 나는 수필을 쓴다. 티브이에서는 정호승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노래가 나온다. 평화로운 수업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