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 아버지는 자신의 삶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해, 86세 되던 해에도 '96세까지 사실 거야. 아직도 10년 남았네 ' 라며 10년간 매달 20만 원씩 용돈을 드릴 계산을 하였다. 수명을 마음대로 늘려서 생각하는 건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지금 홀로 남은 엄마는 83세. 지금도 마음대로 수명을 늘린다. 93세까지는 살 거야.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네~
엄마가 갑자기 아파서 우리 집으로 모셔온 적이 있다. 모든 자식들이 아픈 부모가 얼마 못 살 거라고 생각하고 모셔 오지만 지극한 정성으로 금방 회복하면 무서워진다. 언제까지 노부모 봉양을 해야 하나. 아기는 예쁘기나 하지 노인은 이상한 냄새까지 피운다. 같은 공간에 거주하면 더욱더 힘든 부양이 된다. 결국 6개월간 같이 지내다가 건강이 회복되자 엄마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동안 서로 해피한 날을 보내기만 한 건 아니다. 엄마는 몸이 편하긴 했을 거다. 가사일에서 일체 해방된 유일한 6개월이니까. 그런데 나의 건강이 한계에 달한 때라 시기적으로 안 좋은 때였다. 방송에 나오는 노인학대를 보면 물리적 학대 , 정서적 학대 중 굳이 고르자면 정서적 학대에 해당하겠다. 그전에는 내색하지 않았던 엄마에 대한 불편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으니.
돌아가신 아버지와 평생에 걸친 불화로 인해 노이로제성 잔소리를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곁에서 고스란히 주워 들었던 유년기 때문에 엄마의 목소리는 천사의 목소리가 아닌 그 반대. 뱀의 이빨이 머리에 박힌 느낌으로 자랐다. 아버지를 겨눈 칼인데 왜 내가 계속 찔리는 건지. 아버지는 나무토막처럼 매일 칼에 베이지만 비명이 없다. 아버지의 소리 없는 비명과 나의 비명이 계속 찔렀다. 평생 칼춤을 춘 그녀도 제정신 아니겠지만 그녀는 의외로 강했다. 모든 독을 뿜어냈으니 스스로는 지켜냈다. 그 화살에 맞은 나.
대학에 가서도 책을 읽는 이유는 단 하나. 왜 살아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였다. 죽고 싶은 마음을 이기기 위해, 벗어나기 위해 했던 독서. 책을 통해 얻어야 하는 유일한 답. 살아야 한다. 살고 싶다. 그런 과정이 나를 단단하게 했지만 우울이 치유된 건 아니었다. 잠재된 우울은 결국 폭발. 결혼생활이 우울을 더욱 극했다. 아버지와 엄마 두 사람 간의 소통의 부재로 인한 갈등을 직접 경험하자 걷잡을 수 없이 힘들어졌다. 세상에는 소통을 잘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이 있다. 소통, 공감이 없는 삶이 어떻게 파국으로 가는지를 생생히 목격한 나로서는 도망을 선택했다.
' 엄마, 엄마 목소리를 내가 못 듣는다고.' 나의 조용한 비명에 엄마는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그래, 니가 맏이니까 니가 제일 많이 그랬겠지.'라며 풀 죽어 말했다. 이후 내가 말을 먼저 걸지 않으면 말을 하지 않았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엄마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딸이니까, 안부 전화를 하려면 핸드폰을 켜고 번호를 누르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덮었다가 다시 꺼냈다가를 몇 번 반복하다가 전화를 건다. 이러저러 이야기를 하면 핸드폰을 멀찌감치 떨어뜨리고 모기만한 소리를 대충 듣는다. 그러다가 가까이 대고 말하고 엄마가 말할 때는 다시 모기소리가 된다. 그래도 참고 전화를 건다. 96세까지 살 지 안 살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