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바이올린 소리에 미쳐서 매일 바이올린곡을 들었다. 바람을 가르는 듯한 쨍한 그 소리가 너무 좋았다. 그런데 요즘은 피아노 소리를 하루종일 듣는다. 피아노곡을 틀어놓고 영화를 본다. 유튜브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로 배경음악이다. 그래서 딱딱한 시사를 들을 때도 마음은 평온하면서 그다지 격해지지 않는다. 남들은 멀티가 가능하냐고 하는데 원래 멀티를 좋아한다. 어떻게 보면 산만하고 어떻게 보면 집중력이 강하기도 하고. 예전에 거실에 티브이 두 대를 틀어 놓고 오디오 음악을 튼 적도 있다. 외부인이 와서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거실 한가운데에 탁구테이블이 있었다. 결국 아래층에서 불만을 얘기해서 한 달 정도 펴놨다가 접었다. 그리고 그 탁구대는 이사를 할 때 버렸다. 2000년도에 30만 원 정도 주고 샀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탁구라켓정도는 잡는다. 집에 탁구대가 있다고 하면 수십 평 되는 아파트인 줄 아는데 그냥 32평인데 욕심을 내봤다.
예전에는 음악감상실이란 게 있었다. '응답하라. 1988'보다 더 전 해인 1984년도부터 1986년도 정도 감상실에 다녔던 것 같다. 그때 나는 고3 ~대학교2학년 정도였다. '응답하라'에서는 DJ가 음악을 틀어주는 다방이었는데 그런 곳은 좀 시골에 있었고 영화관처럼 되어 좌석 앞에 있는 스크린에서 영화가 상영되고 음악이 나온다. 영화는 자막으로만 보고 음악을 헤드셋으로 들은 건지, 선택적으로 영화나 음악을 헤드셋으로 들은 건지. 기억도 가물거린다. 나는 주로 화면은 자막으로 보고 음악을 헤드셋으로 들었던 것 같다. 20세기 가장 낭만적인 공간이 그곳이라 기억한다. 집에서 자주 그런 상태를 연출한다.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옛날이야기를 더하자면 아주 밝은 음식점 겸 댄스장이 있었다. 쫄면 같은 걸 먹고 춤추고 싶으면 무대에 올라가서 춤도 췄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개망신인가. 그런데 그런 곳이 있었다. 너무나 스피디한 세상에 살다 보니 연기처럼 생겨났다가 사라진 20세기 산물들이 너무나 많다. 삐삐는 써보지도 못하고 사라졌다. 주로 영업사원 전용이라 안 샀던 것 같고 그러다가 탱크 같은 핸드폰이 나왔다. 팔뚝만한 핸드폰을 청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화장실에 갔다가 물에 퐁당 빠진 적도 있었다. 그때 나보다 10살이 더 많던 40대 여선생이
'요즘은 개나 소나 다 핸드폰 쓴다'라고 갑작스런 공격(?)을 해서 사실 점점 핸드폰 수요가 늘던 시절이라 딱히 반박은 못 했지만 기분 좋은 말은 아니었다.
나이가 60이 다 되어가니 올드한 이야기만 하는 것 같다. 그냥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려니하고 들어도 좋고, 예전에 할머니 얘기 듣다 보면 '뭔 이런 황당한 이야기'라면서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느낌이 좋았다. 어쩔티비처럼 말도 안 되는 말이 유행어라고 하는 세상이니ㅡ 어쩌라고 티비나 봐라. 말도 안 되는 소리한다.티비 보는 우리 같은 세대들도 까면서 하는 소리란다.
10들은 티비도 안 본다나. 하긴 13살 조카도 유튜브만 맨날 본다. 우리 아들들도 거실에 오래된 티비를 버리고 55인치 큰걸 사다 놔도 한 번을 안 본다. 티비를 보며 같이 노닥거리는 것도 잊혀지는 일이 될 것 같다. 점점 각방에 틀어박혀 나만의 세상에서 살아간다.
나는 내세상에 살고 너는 네세상에 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