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연극)를 보고

by 신기루

이렇게 흐리고 우울한 날은 무슨 색일까. 마크 로스크라면 어떤 색을 칠하고 싶을까. 색을 통해 마음을 드러내고 타인과 공감하려 했다. 자신의 그림을 '감성을 가진 관객'이 봐주길 바랬다. 마음을 울리는, 영혼을 치유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화가. 뉴욕의 포시즌 레스토랑의 벽면을 채운 자신의 그림들이 식사하며 떠드는 돈 많은 부자들에게 장식용품이 된 걸 못 견뎌서 결국 돈을 돌려주고 그림을 되돌려 받는다. "그들은 내 그림을 보지 않을거야." 자기 그림이 소통되지 않고 공감되지 않는 걸 못 견딘 거지. 그 그림들 중 몇 작품은 일본 지바현 사쿠라시에 있는 DIC가와무라기념미술관에 있다고 한다. 비행기 공포증이 있는 나이지만 여기는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전시 도록에 있는 프린트된 그림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직관을 위해서는 원화를 봐야 한다. 감정을 색으로 표현했다고 하는데 충분히 맞는 말이고 색을 통해 인간은 치유될 수도 있다. 따뜻하고 밝은 색에서 따뜻하다는 것은 촉각인데 감각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글을 읽을 때 그 글에서 과일향과 입안에 군침이 도는 느낌이 날 때가 있다. 뇌는 대상을 통해 모든 감각을 일깨운다. 글, 그림, 음악, 풍경, 사람, 음식, 색깔, 소리, 빛..... 그는 색으로 표현한 그림을 그렸다. 색을 전면에 풍부하게 완전히 웠다. "나는 추상화가가 아니다. 색이나 형태 같은 것에 관심 없다"고 했으나 그를 추상주의나 색면화가라고 부른다. 어떤 주의나 그룹에 묶는 것은 부르기 편해서 그럴 것이다. 작가에게는 그것들과 전혀 관계가 없다. 그는 "인간의 기본 감정인 비극, 황홀경, 운명을 표현하고 싶을 뿐이다."고 했다. 어제 본 다비드 자맹은 '자유, 온정, 삶에 대한 사랑'이 키워드였다면 그에겐 비극, 황홀경, 운명이다. 작가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가 있다. 우리의 삶은 결국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에 비극이다. 슬픔이다. 그런데도 꾸준히 먹고 뭔가를 하며 살기 위해 바둥거린다. 가끔은 환희, 황홀감을 느낄 때도 있고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이 답답할 때가 있다. 내가 살아가는 반경은 지극히 좁은데 이 안을 맴돌다가 죽어야 한다. 래서 영혼은 아프고 치유받고 다시 아프고 치유하고. 그 한가운데에 영혼을 치유할 예술이 있고. 그는 말년에 우울증으로 자살했다고 하는데. 스스로는 결코 치유될 수 없었던 건지. 이중섭 화가도 "인생은 아름다운데 슬프다."고 했다. 언젠가 교과서에 나온 그의 전기에서 읽은 이 말은 내 머릿속에 자주 맴돈다. 아름다운데 비극이다.

마크 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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