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말이 없었다. 남동생이 말이 없다. 둘째 아들이 말이 없다.
둘째를 깨워 밥을 먹이면 말없이 핸드폰을 보며 밥을 먹는다. 요즘은 첫째도 그렇다. 그냥 혼밥 하다 보니 습관이 된 거 같다. 그래도 그렇지. 밥 먹을때 말고는 얼굴 부딪히기도 어려운데. 엄마는 크게 그들에게는 관심없는 사람인가 보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없이 살다가 말년에는 엄마의 잔소리가 진력났는지 대들기 시작했다. 원래도 말이 없지만 바람핀 게 책 잡혀서 평생을 닭대가리 쪼이듯 당하고 살았다. 나를 제일 예뻐라하는 아버지를 맨날 혼내니까 난 엄마가 싫었다. 애증의 관계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나 보다. 엄마는 너무 잘 났고 아버지는 못났다. 너무. 둘이 너무 차이가 나니까 애초부터 안 맞는 커플인데 옛날사람들은 그러고 살았다. 요즘도 이혼을 미루다미루다 지금은 심각한 상황에 놓인 내 친구가 있다. 재건축이 되어 새아파트로 들어가는데 거기에 남편을 빼고 들어가고 싶어하는 내 친구 ㅇㅇ. 아이들에게 아빠랑 살건가 엄마랑 살건지를 물어보겠다고 했다."아서라. 애들이 무슨 죄냐." 관두라고 했는데 내말은 지지리도 안 듣는 고집센 ㅇㅇ은 아마도 물어볼지도 모른다.아무튼 이런 지경에서도 왜 이혼은 고려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남편이 잠시 원룸에 혼자 산 적도 있다. 무슨 잘못을 했길래 아마도 벌 준 거겠지. 그러다 다시 합치고 살다가 요즘은 서로 말을 않고 아이들이 가운데서 말을 전달한단다. 비극이다. 이 지경이 되어버렸는데 나날이 우울하단다. 너무 오래 문제를 안고 살면 문제에 침식되어 화석화된다. 도저히 빠져나오지 못 한다. 친구는 나에게 하소연하지만 고통을 바라볼 뿐 해줄 말이 없다.이혼은 스스로의 선택지이니까. 졸혼이란게 급부상한 적이 있다. 이혼은 못 하고. 하나의 타협지. 어정쩡한 해결책인가? 그 문제 속에서 계속 허우적대며 살아야하는 더 큰 늪이 아닐까.
말 없는 걸 하소연하다가 여기까지 와버렸다. 말이 없는건 스스로는 에너지를 비축하는걸까. 오늘 수다를 떨려고 두 여자를 만나러 가고 있다. 고기는 씹어야, 말은 해야 맛이라고 서로 말 못 해서 안달 아닌가. 보통은. 너무 혼자 떠들어대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말이 없는 사람은 적응하면 스트레스는 없다. 고요만 있을 뿐. 나도 크게 관심 갖지 않으면 된다. 그들은 남을 말로 공격은 안 하지만 침묵으로 공격할 때도 있다. 소통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고통이다.
말이 없는 남동생은 엄마가 암 판정 이후 오늘내일할 때 집에 5일정도 있었다. 호스피스병동에 가느니마느니 할때 아주 잠시 집에서 간호를 해볼까 했다. 그러면 퇴근후 잠시라도 "엄마, 오늘은 어떠냐",자고 있어도 방에 들어가서 얼굴이라도 보고 아침.저녁 들여다봐야 하는데 말 없는 인간은 그것도 안하더라.온통 독박간호 하다가 결국 병원으로 들어갔다. 말이 지독히도 없는 사람들을 나는 잘 이해할수 없다. 집안에 엄마랑 나 빼고 다 말이 없어서 소통이 잘 안 되고 답답하게 살다 보니 그런 사람을 피한다. 그나마 제2의 남편은 수다쟁이라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