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말이 없는

by 신기루

아버지가 말이 없었다. 남동생이 말이 없다. 둘째 아들이 말이 없다.

둘째를 깨워 밥을 먹이면 말없이 핸드폰을 보며 밥을 먹는다. 요즘은 첫째도 그렇다. 그냥 혼밥 하다 보니 습관이 된 거 같다. 그래도 그렇지. 밥 먹을때 말고는 얼굴 부딪히기도 어려운데. 엄마는 크게 그들에게는 관심없는 사람인가 보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없이 살다가 말년에는 엄마의 잔소리가 진력났는지 대들기 시작했다. 원래도 말이 없지만 바람핀 게 책 잡혀서 평생을 닭대가리 쪼이듯 당하고 살았다. 나를 제일 예뻐라하는 아버지를 맨날 혼내니까 난 엄마가 싫었다. 애증의 관계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나 보다. 엄마는 너무 잘 났고 아버지는 못났다. 너무. 둘이 너무 차이가 나니까 애초부터 안 맞는 커플인데 옛날사람들은 그러고 살았다. 요즘도 이혼을 미루다미루다 지금은 심각한 상황에 놓인 내 친구가 있다. 재건축이 되어 새아파트로 들어가는데 거기에 남편을 빼고 들어가고 싶어하는 내 친구 ㅇㅇ. 아이들에게 아빠랑 살건가 엄마랑 살건지를 물어보겠다고 했다."아서라. 애들이 무슨 죄냐." 관두라고 했는데 내말은 지지리도 안 듣는 고집센 ㅇㅇ은 아마도 물어볼지도 모른다.아무튼 이런 지경에서도 왜 이혼은 고려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남편이 잠시 원룸에 혼자 산 적도 있다. 무슨 잘못을 했길래 아마도 벌 준 거겠지. 그러다 다시 합치고 살다가 요즘은 서로 말을 않고 아이들이 가운데서 말을 전달한단다. 비극이다. 이 지경이 되어버렸는데 나날이 우울하단다. 너무 오래 문제를 안고 살면 문제에 침식되어 화석화된다. 도저히 빠져나오지 못 한다. 친구는 나에게 하소연하지만 고통을 바라볼 뿐 해줄 말이 없다.이혼은 스스로의 선택지이니까. 졸혼이란게 급부상한 적이 있다. 이혼은 못 하고. 하나의 타협지. 어정쩡한 해결책인가? 그 문제 속에서 계속 허우적대며 살아야하는 더 큰 늪이 아닐까.

말 없는 걸 하소연하다가 여기까지 와버렸다. 말이 없는건 스스로는 에너지를 비축하는걸까. 오늘 수다를 떨려고 두 여자를 만나러 가고 있다. 고기는 씹어야, 말은 해야 맛이라고 서로 말 못 해서 안달 아닌가. 보통은. 너무 혼자 떠들어대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말이 없는 사람은 적응하면 스트레스는 없다. 고요만 있을 뿐. 나도 크게 관심 갖지 않으면 된다. 그들은 남을 말로 공격은 안 하지만 침묵으로 공격할 때도 있다. 소통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고통이다.

말이 없는 남동생은 엄마가 암 판정 이후 오늘내일할 때 집에 5일정도 있었다. 호스피스병동에 가느니마느니 할때 아주 잠시 집에서 간호를 해볼까 했다. 그러면 퇴근후 잠시라도 "엄마, 오늘은 어떠냐",자고 있어도 방에 들어가서 얼굴이라도 보고 아침.저녁 들여다봐야 하는데 말 없는 인간은 그것도 안하더라.온통 독박간호 하다가 결국 병원으로 들어갔다. 말이 지독히도 없는 사람들을 나는 잘 이해할수 없다. 집안에 엄마랑 나 빼고 다 말이 없어서 소통이 잘 안 되고 답답하게 살다 보니 그런 사람을 피한다. 그나마 제2의 남편은 수다쟁이라서 좋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태원 참사 10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