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리가 안 좋아서 결국 수영장을 찾았다. 두 번 정도 해 보니 운동도 되는 것 같아 슬슬 시동이 걸려 아침에 수영장에 가려고 수영복을 챙겼다. 그런데 방송에서 이태원 참사 100일을 맞아 오늘 녹사평에서 광화문까지 시민과 함께 걷는다고 했다. 녹사평에 가서 조문을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발걸음이 무거워 가지 못했다. 가서 마주 대할 현실이 너무 두려웠다. 그런데 더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수영복을 던지고 잰걸음으로 갔다. 이미 "진실"이라는 대형간판을 필두로 사람들이 출발하고 있었다. 빨간불인데도 사람들이 서둘러 건너가는 게 보여서 따라 건넜다. 녹사평역 조문소에서 조문을 마치고 다시 빨간불에도 차를 건너 대열에 합류했다. 책임자 처벌, 진상규명을 외치며 국방부 앞에 다다랐다. 잠시 멈춰 서서 '대통령 공식사과', '이상민 파면', '독립기구 설치',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외쳤다.
서울역에 도착해서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내 체력으로 슬슬 한계가 오는 것 같다. 난 집으로 가서 실시간 방송을 보기로 했다. 집에 오니 '서울의 소리'에서 방송을 하고 있다. 시청 앞에 조문소 설치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서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설치가 끝나자 유가족들이 영정을 놓았다. 너무 급하게 설치하느라 영정 진열이어려워서 난감해하다가 나중에 해결이 된 것 같았다. 그 사이에 시청 직원과 경찰들이 조문소를 철거하려고 인파들을 밀고 사람들은 압사한다고 소리 지르는 것이 방송으로 다 전해졌다. '광장'에 설치하는 게 싫겠지. 군중이 모이면 파도가 거세지니까. 시청 앞에는 사람들도 많이 지나다니고 접근성도 좋으니까 그런 곳은 피해 녹사평역 아래 지하에 추모공간을 만든다는 둥 자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몰아내려고 한다. 정부의 치부를 감추려고.
어떤 공포보다 인도에서 걷다가 죽는 것이 가장 큰 공포가 되었다. 어디서든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을 준 이번 사건은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진상규명을 해야 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그날, 우리 아들도 녹사평역에 있었다. 이태원이 너무 복잡해서 미처 식당 예약을 못 해서 녹사평역 인근에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생전 카톡도 잘 안 하던 애가 그날 밤 -잘 들어왔어요-라는 카톡을 남겼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게 무슨 말이지? 영문을 모르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그제사 이유를 알았다. 그러고도 또 전화를 해서 -괜찮냐? 거기는 왜 갔니?라고 물어봤다. 동아리 모임을 했고 12시 넘어서 집에 왔다고 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누구에게라도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다 같은 부모 마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어머니들이 일어나면 무서운 일이 생긴다. 암울한 사회에서는 누구에게라도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난 뒤에 후회해 봤자 이미 늦었다. 내 새끼를 위해서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 부모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을 외면하면 결국 내가 당하고 내 새끼가 희생자가 되는 것이다.
오늘 남편은 서울에 와서 시청 앞 제단에 조문을 했다. 남편은 영정 사진을 보고 하나같이 너무 예쁘고 잘생겼다고 했다. 진짜 너무 예쁘고 잘 생긴 아이들이 .......우리가 억울한 한을 풀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