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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루 Mar 16. 2023

인비저블 라이프

감독  카림 아이노우즈

배우  줄리아 스토클러, 카롤 두아르테


 두 자매가 있다. 동생은 피아노를 잘 친다. 언니는 항해사와 연애를 하다가 몰래 가출을 한다. 그러나 곧 남자가 바람나서 도망가고 임신한 채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는 격노하여 쫓아 보낸다. 혼자 아이를 낳고 갖은 고생을 다하며 살다가 역시 혼자 지내면서 동네 아이들을 돌봐주며 사는 아줌마를 만난다. 언니는  동생에게 편지를 써서 아버지에게 보낸다. 편지는 서랍에 쌓이고 동생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동생도 언니가 그리워 수소문하여 찾는 중이다. 그러던 중 언니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이제까지 자기 꿈을 위해, 피아니스트가 되고자 했던 꿈을 이제 막 이루려고 하던 순간 언니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피아노를 태워버린다. 그 와중에 손까지 다친다. 그런데 사실 언니는 죽은 게 아니었다. 언니와 같이 살던 이가 췌장암으로 죽으면서 그 집을 물려주기 위해 이름까지 물려줬다. 그래서 다른 이의 이름으로 살아가기 위해 남의 무덤에 자신의 이름을 적은 것이다.  


  시간이 흘러 노파가 된 동생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언니의 편지를 발견한다. 편지에 적힌 주소를 찾아가니 언니와 똑닮은 딸이 거기에 있었다. 언니는 만나지 못했지만 결국 그의 딸과 만남으로써 영화는 끝이 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언니는 남자와 가출하여 임신까지 하였으나 남자는 다른 여자들에게 가버렸고. 태어난 아이를 홀로 책임져야 했다. 동생도 자신의 꿈을 위해 아이를 갖는 걸 미루려 했으나 결혼과 동시에 임신을 했고 공부를 더 하고 싶었으나 다시 둘째를 임신하게 된다. 번번이 임신 앞에 계획이 무산된다.  남편은 아이 키우고 집안일 하는 게 여자의 당연한 몫이라고 말하고.

 

  지금 나이가 들어보니 아이를 기르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알지만 젊었을 때는 아이한테 매어 있는 것보다 나의 재능을 한번 펼쳐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한 때이다. 사회를 벗어나 가정의 울타리에만 있으면 낙오되고 뒤처지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나도 휴직을 하고 일년간 아이를 키울 때 우울했다. 산후 일년 내내 몸도 회복 안 된 상태에서 육아가 힘들기도 하고 집안에 갇혀 있는 자체가 우울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했던 시간인걸 되돌아보면 안다. 아이와 단둘이 밀도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기에. 금은 주변에 곧 출산할 후배들에게 말한다. 휴직은 꼭 하라고. 가능한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게 좋다고. 그러나  그들 역시 집안에서 느끼는 고립감과 우울감으로 고통받을 것  같다. 그런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독박육아가 아니라 가끔 어디에 잠시라도 맡기고  여유시간을 조금만 가진다면 삶에 활력도 나고 우울을 예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애기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모여 카페든 어디서든 수다를 떨지 않나. 그렇게라도 서로 유대하고 의지해야 고된 육아를 이길 수가 있다.


 두 여자의 삶을 보면서 임신과 육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의 굴레를 축복이라고만 부를 수 없다는 걸  안다. 예쁜 아가를 원하는 건지 미래 노동자를 원하는 건지 요즘은 저출산 문제가 가장 큰 이슈이다. 집, 교육비, 일자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자들이 아직도, 절대적으로 육아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가사일에 동참하지 않는다. 온전히 독박육아, 독박가사여성들에게는 힘든 심리적 요인 아닐까. 나도 조부모 육아로 엄마를 희생시켰지만. 육아가 가장 큰 문제이다. 교육비는 나중문제이다. 남자들도 회사에서 체력 다 쓰고 와서 기운 없어서 애 못 보고, 설거지 못 한다고 하는 경우도 많다. 주당 69시간인가 뭔가 하는 이런 고강도 대책 앞에서 출산은 누가 하고 애는 누가 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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