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에게 언제가 제일 좋은 날이냐고 물어봐라. 아마 '월요일'이라고 할 것이다. 주말에는 어딜 가나 사람에 치여 못 다닌다. 드디어 모든 직장인들이 건물 속에 박혀 일을 하고 있을 때 맘껏 돌아다닐 수 있다. 내 또래 친구들이 지옥의 월요병을 겪고 있을 때 햇살을 가르고 훈풍에 코를 실룩댈 때 자유란 걸 느낀다. 아, 시원해~~~
아들들이 한 집에 살았다. 서른한 살, 서른두 살 될 때까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느라 같은 집에 넣어놨다. 분가를 한 거였지만 완벽한 독립은 아니다. 관리비, 가스비, 세탁세제, 휴지 등등 모든 생활비품이나 유지비를 엄마가 다 대 주었다. 그러다가 요즘 둘째 아들을 케어하느라 엄마가 있으니까 가뜩이나 완벽한 독립을 못 해 안달 난 첫째가 드디어 집을 나갔다. 이제 완벽하게 스스로를 케어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본인이 다 사야 한다. 새로 얻은 집에 가서 엄마가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데 아예 가지 않았다. 입주청소를 하지 않고 들어간 탓에 가스레인지 위에는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모양새이고 안 봐도 먼지구덩이 집일 텐데 청소하는 방법만 가르쳐주고 외면하고 있다. 이제 엄마의 손길은 그만해야 될 것 같아서. 나가기 전에 화장실 청소하는 방법을 물어보길래 몇 가지 가르쳐주고 일체 손을 뗐다. 옛날 같으면 설레발을 치며 청소를 싹 하고 필요한 물건을 다 갖다 놓겠지만 아들도 요즘은 간섭을 엄청 싫어한다. 자기가 물어보는 것만 가르쳐 달라고. 미리 아는 척하고 얘기하면 아주 듣기 싫어한다. 그래서 나도 관심을 끊었다. 그래, 네가 다 알아서 해봐라. 실패도 경험인데 부모가 실패를 막느라 간섭하면 불안증만 높이게 되니까. 그래서 엄청난 자제력으로 나를 누른다. 물론 내 몸도 편하다. 혼자 좌충우돌해 보는 거다. 가스레인지 위 기름 떨어지면 닦을 것이고 필요한 건 '다이소'에 다 있으니까. 스스로 자립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쁜 일이니까. 외국에 나가면 불안해서 자주 톡을 하는데 한국에서는 어딘들 못 돌아다닐까.
어제 집에 와서 이것저것 자기 물건들을 더 챙겨 나가면서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나중에 좀 정리가 되면 초대를 하겠다고 하길래, "땡큐"라고 했다. 사실 갈 생각도 없었는데. 엄마가 모르는 완벽한 공간이야말로 진정 아지트 아닌가. 형이 집을 나가면서 둘째는 덩달아 단독가구가 되었다. 둘째도 직장을 얻으면 나는 진정 백수가 될 수 있다.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가장 한가한 평일 시간대에 돌아다니는 백수의 자유 시간이 재깍재깍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