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by 신기루

반전의 반전의 반전의 반전. 네 번 반전이 오면 깜짝 놀랐다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멋진 소파와 아늑한 분위기. 위스키, 파티를 준비하며 친구들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남친 아닌 남사친이 고백을 한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으나 여자는 평소에 나도 너한테 호감이 있었다며 남자의 고백을 받아준다. 그 사이 남자친구가 와서 프러포즈를 하자 마지못해 또 승낙하고 만다. 이때 또다른 여자친구가 와서 자기 남자친구에게 다른 남자랑 '키스'했다고 고백을 한다. 그러다가 자기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에게 고백한 사실을 알고 여자친구에게 추궁한다. 결국 모든 사실이 드러나자 갑자기 프러포즈받은 여자가 죽는다. 그리고 막이 어두워지자 배우들이 인사를 한다. 관객들은 '이게 뭐지? '라는 반응을 보이는데 그 순간 연출자가 무대에 나타난다.

ㅡ지금 갑자기 이 작품의 작가와 영상통화가 되었다고ㅡ

영상통화가 시작되자 어떤 관객은 나가버린다. 아, 나도 갈까? 하다가 그냥 좀 더 보기로 했다.

작가는 시리아에 있는데 전쟁 상황 중에 편안하게 집에서 드라마를 보는 일상이 그립다고 했다. 아, 그래서 이런 드라마를 썼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배우와 연출자가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데 조금씩 빗나간다. 그러다가 모두 궁금해하는 마지막 장면을 물어봤다. 여자는 왜 갑자기 죽는 거냐고.

그랬더니 화학무기 때문에 죽은 거라고 했다. 리가 지금까지 본 무대와는 전혀 맞지 않은 얘기를 하여 연출자와 배우를 곤혹스럽게 한다. -어휴, 대체 연출을 어떻게 한 거야? 지금 작가와 통화를 하다니... 쯧. 하다가? 어? 그래도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연출자가 배우들과 둥글게 모여서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렇게 끝난다고? 또다시?


성질 급한 관객 1인, 나는


- 질문 있어요. (연출, 안 돌아봄), 질문 있어요.


- (연출이 돌아보자) 지금까지 연극인 거예요?라고 하자


-(연출자가) 아, 네. 그래서 지금 다시 하려고요.라고 하는 순간 무대는 뒤집어진다.


전쟁터. 포탄 소리, 총소리. 화염연기...


똑같은 대사를 무대만 바뀐 채 다시 시작한다. 같은 대사여도 배경에 따라 너무 다르게 들린다. 작가가 노린 게 이런 걸까. 지극히 평범하고 여유롭게 삶을 누려야 하는 인간들이 갑자기 전쟁터에 내팽개쳐져서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감정이 포동포동하게 살아 숨 쉬지 못하고 흙더미에 거칠게 구르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작가는 평화로운 일상과 전쟁터를 순식간에 대비하여 시각적으로 확연히 구분하게 한다. 너에게 주어진 말랑말랑한 침대와 신선한 공기와 달콤한 식사들이 전쟁이라는 비인간적인 공간에서는 거친 바닥과 오염된 공기와 깨진 접시만 뒹굴게 될 것이라고. 그 속에서 때로는 사랑이 살아 꿈틀대거나 비참하게 버려지기도 한다고. 전쟁터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비인간적 행위들 중 여성의 성유린을 '키스'라고 한다는데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의 언어만큼이나 우리는 그들의 전쟁에 대해 방관하고 무심하게 살아간다. 아직도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방공호에서 영하의 추위 속에서 밤을 지새우는 것만으로도 공포와 질병으로 죽을 위기에 놓이는데. 전쟁은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우리나라도 사람들이 무감각해져서 그렇지 정말 살벌하게 전쟁이 날까 두려운 때이다. 전쟁만은 지도자가 일으키지 않게 감시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건 작가와의 인터뷰가 진행되자 나가버린 관객이 있는데, 그는 배우일까? 아닐까? 그녀는 극이 진행되고 늦게 들어온 민폐관객인 것 같은데. 의도적으로 그렇게까지 배치하지는 않았겠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여자 때문에 인터뷰 상황이 더 리얼했다. 이것까지 연출이라면 더 오싹해진다. 완전히 속았으니까.

오늘 헐레벌떡 늦게 도착하여 출연진을 보지 못해서 더 속았던 것 같다. 출연진에는 통역사와 작가가 있었던 것 같다. 아휴. 속아 넘어가니까 더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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