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초상이라고 할 만한 '세일즈맨의 죽음'은 주인공 윌리가 평생을 달려왔지만 62세가 되어도 여전히 돈이 없다. 첫째 아들이 9살 때 집을 샀는데 그 아들이 34살이 된 지금, 이제 마지막 200달러만 갚으면 온전한 자기 소유의 집을 갖는다. 평생 벌어도 자기 집 한 채 갖기가 어려운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다. 결국 200달러를 갚고 온전히 자유가 되었는데 그 집에는 이제 아무도 살지 않게 되었다고 장례식장에서 말하는 아내 린다의 이야기가 슬프게 들린다. 자기 인생을 갈아 넣어 평생을 놀지 않고 일만 했는데 편안한 여생이 남은 게 아니라 여전히 일을 해야 되는 처지이다. 거기다가 유일한 자랑거리이자 사랑의 결정체 자식들마저도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 하자 완전히 바닥으로 추락한다.
특히 첫째 아들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오히려 '나는 그냥 나일뿐인데 아버지의 엄청난 기대로 인해 오히려 삶이 더 힘들어졌다'며 대들자 더 이상 윌리는 버틸 힘이 없어진다. 둘째는 철없이 여자 꽁무니만 따라다니고 있는 자유로운 영혼인데 그래도 인정도 있고 눈치는 있는 편이다. 어딜 가나 첫째에게 부모의 기대는 남다른 것 같다. 그로 인해 첫째가 부담감이 높은 건 사실이겠지만 일이 안 풀리고 자립을 못 한 것을 부모탓만 하는 건 잘못된 것 같다. 기대를 많이 해서 자립에 방해되었다는 건 핑계 아닐까? 무엇이 되든 스스로 노력하고 자기 삶을 꾸려가야 하는 게 어른이다. 뭐든 부모탓, 남탓 하는 게 자기를 위한 일일까? 관점에 따라서 부모의 과한 기대감을 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학 과목 낙제를 받은 것도 본인이고 말하지 않고 눈치만 본 것도 본인이지 정말 부모를 위해서 속였을까? 이일, 저일 하다가 아버지가 그 일을 만족 못 할 것 같아서 관뒀다고 하는 것도 핑계라고 본다. 부모로부터 심리적 독립을 스스로 했어야 하는데 첫째는 마지막 장면에서 '이제 나가겠다. 다시는 부모 찾지 않겠다'라고 불만을 토로하여 아버지를 더욱 좌절하게 만들었다. 결국 자식들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란 말을 작가 아서 밀러도 하고 있는 것 아닐까? 남을 바꾸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인격체는 스스로 작동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누가 뭐라 해도 그 회로가 바뀌기 어렵다. 그래서 서로 갈등이 생기는 것 아닐까.
주인공 윌리는 평생 일해 온 결과 남아있는 돈도 없고 회사에서 헌신짝처럼 해고 통보를 받고 자식들로부터도 좀 더 나답게 살게 해 주지 왜 그렇게 못 했냐는 질타를 받자 그만 삶의 끈을 놓은 것 같다. 그가 달려온 이유가 가족이었으니까 가족들로부터 인정을 못 받자 비참했을 것이다.
그의 대사 중에는 '외롭다'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항상 외로운 상태, 영혼은 늘 배고픈 상태였다. 외로운 영혼들이 둥둥 떠 돌아다니다가 외롭게 떠나는 것이 우리 인생인지도 모른다.
세일즈맨의 죽음, 국립달오름극장
박근형, 예수정, 성태준, 김동완 외 여러 배우들 모두 훌륭한 연기 잘 봤습니다. 덕분에 내용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