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미술관에서 열린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전에 다녀왔다. 지난번 조선의 백자 전시전에 갔을 때 카텔란 전시는 예약을 못 해서 못 봤다. 사람들이 워낙 많이 찾아서 기회가 잘 안 왔다. 드디어 카텔란 전시를 보러 갔는데 역시 '우와'하고 왔다. 오디오로 작품들을 해석해 주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오디오 없이 봐도 직감적으로 전달되는 부분이 많이 있고 쉽고 유머러스하게 전달하는 측면이 있어서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작가의 작품을 배경으로 다시 재구성한 작품은 원작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어서 설명을 듣는 편이 낫다.
먼저 전시장 입구에 들어가니까 '브레멘 악대'를 소재로 한 브래맨 악대의 화석이 있었다. 화석을 보면 죽음을 연상하게 된다. 돌아서면 다시 미국 성조기가 검게 처리되어 있고 거기에 총탄 자국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것 역시 미국이 연일 총기사고로 희생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전시장 여기저기에 박제가 된 말들이 벽에 박혀 있거나 공중에 매달려 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오싹한 느낌이 든다. 바닥에는 천으로 덮인 시체를 연상시키는 대리석들이 있는데 그것 또한 죽음이다. 우리가 잊고 살고 있는 삶의 다른 한쪽인 죽음을 계속 떠오르게 한다.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의 얼굴은 카텔란으로 보이는데 작가 자신의 죽음이자 동시에 우리들 역시 언젠가는 침대에 꼿꼿하게 누워서 이 세상과 이별할 거란 걸 말하는 듯하다. 이리저리 눈을 돌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며 놀람의 연속이다. 신선한 자극이 이런 걸까. 익숙하지 않은 것들, 평소에는 피하고 싶은 것들을 자꾸 눈앞에 들이미는 것 같다.
벽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학생이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다가가 보면 양손에 연필이 박혀있다. 학생이 학교에서 당하는 폭력들. 나무 의자에 앉아서 10시간씩 버티는 것 자체가 폭력이다. 공부 재능이 없는 아이에게 학교는 폭력이다. 참아야 되고 노는 시간 종이 날 때까지 버텨야 한다. 딱딱한 책상과 의자에서. 수업시간에 아예 잠을 청하거나. 잠자다가 어쩌다가 용감하게 깨우는 선생님에게 대들거나. 깨우지 못하는 선생님은 스스로 권위를 내세우지 못해서 상처받고.
어느 날 교장선생님이 교무회의 때 자는 학생 깨워서 공부시키라고 했다. 지극히 옳으신 말씀 같은데. 그날 충실히 교장선생님의 지시를 따라 자는 애를 깨운 학년부장 선생님과 자다가 깬 학생의 충돌이 있었다는 웃픈 현실. 오히려 지루한 수업시간을 방해하고 자지도 않고 난리 치는 아이들을 보면 차라리 좀 잤으면... 그날은 정작 공부하고 싶은 아이도 하지 못하는 망하는 날이 되고 만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인 경우 수능에 필요하지 않은 과목인 경우 자거나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걸 말리지 않는데 중학교에서는 자거나 다른 과목을 공부하면 왜 안될까? 자는 아이는 게으름 피운 것에 대해 자기 인생 자기가 책임 지면 되는데. 공부시간에 공부하지 않을 권리가 학생에게는 없는 걸까. 미숙하니까 억지로, 강제로 시켜야 한다고 하는데 학생은 미숙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결정한다. 잘건지, 말건지. 선생님의 권위를 위해 두 눈 부릅뜨고 공부하는 시대는 지났다.
공개수업을 하는 날, 자기 엄마가 뒤에 서서 보고 있는데도 엎드려 자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평소에도 자고 그날도 잔다. 정직한 아이다. 엄마 앞에서도 하는 척을 하지 않았다. 괜히 앞에 있는 교사가 민망해서 깨워봐도 그냥 잔다. 이렇게 당당한 아이들을 교사가 무슨 수로 억지로 가르칠 수 있을까. 이 땅의 교사도, 학생도 모두 힘들다. 이 작품 앞에서 가장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외 단정한 소년의 뒷모습을 보고 다가갔다가 히틀러를 보고 깜짝 놀란다든지 운석에 맞아서 누워 있는 교황을 본다든지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아서 기회가 되면 꼭 감상해 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