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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노릇

by 신기루

사람노릇 하기가 참 힘든 세상이다. 사람노릇을 하느라 늘 통장에 잔고가 없다. 부모가 가난하여 늘 생활비를 보탰고,명절이다, 생일이다, 어버이날이다, 보너스날이다 해서 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돈'을 드렸다. 내 옷, 가방, 구두, 해외여행을 포기하고 돈을 드리다 보니 저축을 못 하고 살았다. 가장 큰 이유는 적은 월급이라고 해야겠지만 그것 가지고도 저축하는 사람도 있다. 원래 크게 계획 없이 사는 스타일이라 계획적 저축을 잘 못하는 탓이기도 하지만, 늘 잔고가 없다.

최근 새로 얼굴을 튼 남편의 아들과 딸을 만났다. 둘 다 착한 성품이라 마음이 놓였다. 그중 아들이 큰 수술은 아니지만 시술을 하게 되었다. 뭐라도 해 주고 싶은데 마땅히 할만한 게 없어서 계좌로 돈을 보냈다. 생각지 못 했던 돈을 받게 되어 굉장히 좋아했다.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 없지 않을까. 서른이 다 되어 가는 아이들을 뒤늦게 만나서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돈이란 게 쓰다 보면 항상 부족하지 않은가. 그래서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돈을 줬더니 좋아라 했다. 딸도 곧 간단하지만 수술을 받게 되어 수술 후에 돈을 줄까 한다. 어제 본 넷플릭스 다큐 ''베탕쿠르 스캔들'을 보면 세계 최고 여성부자인 베탕쿠르가 우울증에 걸려 항상 슬픔 속에 살고 있을 때 사진작가 '바니에'가 그녀의 친구가 되어 새 삶을 선물하게 된다. 그래서 그녀는 많은 돈과 그림을 그에게 준다. 감사한 마음을 돈으로 보답한 것이다. 즉 '돈은 사랑이다.'


세상에는 돈이 목적인 사람도 많고 돈의 노예도 많다. 돈이 사람보다 위에 있는 경우도 많다. 최근 유튜브를 시청하다 보면 자발적 관람료나 후원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많은 돈을 선뜻 내놓는 걸로 보아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잘 아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쓰고 남는 돈이 있다면 '돈의 이동'을 통해 부족한 누군가에게 들어가는 게 사람다운 사회를 만드는 게 아닌가. 예전에 IMF때 회사에 다니던 전남편의 시아버지는 월급이 갑자기 끊긴 아들이 생활비를 달라고 해도 주지 않았다. 이후 혼자 아이를 키우다 보니 고등학교 때부터는 돈이 부족하여 장학금을 달라고 시아버지에게 쫓아갔으나 그건 아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주지 않았다. 사람같지 않은 그 사람도 이제 죽었다. 할아버지 부고를 받았지만 화환만 보내고 아이들에게 가지 말라고 했다. 화환도 어디냐. 절을 받을만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른다운, 사람다운, 할아버지다운 행동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 우리도 예의를 다 할 필요는 없다. 그런 집안에서 자랐으니 그의 아들도 말해서 뭣하겠나. 사람노릇 못 하기는 매한가지다.


'돈'이란 걸 내놓을 때 벌벌 떨거나 아예 끄집어내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그들도 사람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사람노릇 못 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노릇 다 하다가는 제 '돈'모으냐고 하겠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 하자는 것이지 다 퍼 주라는 얘기는 아니다. 내가 새로 만난 남편의 아들과 딸에게 할 수 있는 건 돈밖에 없다. 돈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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