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기루 May 19. 2024

아침에 쓰는 일기 3

차이콥스키의 아내

영화 '차이콥스키의 아내'를 보고 왔다.

차이콥스키를 짝사랑하면서 편지로 열렬히 구애를 한다. 차이콥스키는 거절을 하지만 꿋꿋이 사랑을 표현하는 그녀를 결국 받아들인다. 단 조건이 있다.  '만약 당신이 담담한 사랑에도 만족할 수 있다면, 말하자면 형제간의 우애 같은....그럼 청혼할게요.'라며.

 그런데 실제 결혼을 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이후 차이콥스키는 결혼 생활이 창작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떠난다. 3개월도 채 못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듯.

차이콥스키가 자신의 추문을 진정시키려고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그 추문은 동성애자 혹은 미소년을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국 자신이 갈망하던 남자와 결혼은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은 그녀는 비극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혼을 요구하는 차이콥스키와 이혼을 하고 자기 인생을 꾸려가면 되는데 '집착'에 빠져 자기 인생을 진흙탕으로 몰아넣는다. 자기를 좋아해 주는 연인 사이에서 아이를 셋이나 낳지만 고아원으로 보낸 이후 아이들의 행방을 모르거나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차이콥스키의 아내, 그게 내 운명이에요.' 아무도 구속하지 않은 운명을 스스로 짊어지면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그녀를 보며 도저히 사랑이라 부르고 싶지 않았다. 19세기말 사랑이 간혹 그렇게 미화, 포장되기도 하지만.

 지금도 시대를 초월한 사랑이 있나? 초월이 아니라 지체된 사랑을 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을 나는 잘 모르니. 하지만 사랑의 정수는 나를 사랑하고 내가 안전해야 옳은 사랑 아닐까? 나를 다치게 하는 사랑은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다치게 된다. 즉 서로가 안전하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나로 인해 안전하고 편안하고 행복하니? 물었을 때 그렇다고 하면 그 사랑은 계속해도 되지만 너 때문에 나는 불행하다고 하면 헤어지는 게 맞다. 그녀는 서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이름만 사랑인 집착, 광기를 부렸다. 자기 사랑에 스스로  도취되었다고 봐야지.

 그녀의 레이저를 잘못 맞은 차이콥스키는 재빨리 도망갔다. 그녀에게 차이콥스키의 친구가 말한다. '그로부터 빨리 도망가라고.'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어차피 차이콥스키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남들은 다 아는데 왜 자기만 모를까? 알면서 고집부리는 건 망상가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베이비 레인디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