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은

by 신기루

내 가족이 내 글은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과 대화가 잘 되었다면 굳이 혼자만의 독백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말하지 못한 것을 글로 썼을 때 그들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못다 한 말들을 글로 적는다.

옛말에 '서방 복 없는 년 자식 복도 없다'란 말이 있다. 옛날 사람들은 더 옛날 사람들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뜻을 알고 하는지, 모르고 하는지 이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엄마가 어린 우리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할 때 뜨거운 물로 얼굴에 붓는 느낌이었다. '그래, 두고 봐라. 내가 잘 되어서 그 말이 틀렸다는 걸 보여주겠다.' 이런 결심을 하게 만든 것도 엄마의 한스런 넋두리였다. 그런데 최근 그 말이 내 머릿속에 맴돈다. 오죽하면 이혼을 할 정도로 소통이 안 되었던 전남편. 그의 아들이 승승장구할 때는 까먹고 있었다. 그 말을. 그런데 지금은 소통이 안 되는 그 부분에서 나를 괴롭힌다. 잘할 때는 감사한 마음도 들었으나 지금은 모두 그의 탓인 것 같다. 기승전 DNA를 거스를 수 없음을. 우리는 생물학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여 그 위에 정신적인 사유를 하는 동물임을.


돌이켜보면 그는 피터팬 증후군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스무 살이 지나면서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놀기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고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과 사는 것은 고통이었다. 내가 보살핌을 받지 못하니까. 결혼은 서로 의지하려고 만나는 건데 한쪽을 일방적으로 케어한다는 것은 버겁다. 자식을 같이 길러야지 혼자 기른다는 게 말이 되는가. 지쳐서 포기한 거다. 선택한 것이기도 하고.

요즘은 '돌싱 포맨'이란 프로가 있어서 돌싱들도 떳떳하게 '내가 이혼했다'라고 말하지만 20년 전만 해도 쉬쉬 했다. 학교 사회는 더더욱 보수적이라 '이혼'이라도 했다 하면 색안경을 끼고 봤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리 부모님은 이혼했어요.'라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편이다. 난 아직도 굳이 말하지는 않는다.

티브이를 보면 아직도 '이혼은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일이다.'라고 전문가들이 나와서 말한다. '아이들에게 상처 준' 큰 잘못을 저지르는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참을 수 있으면 참아야 한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는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잦은 이혼이 현실이라면 '상처'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이해'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춰서 한용운의 '님의 침묵'처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져야 새로운 만남이 있는 것이다. 인생은 만나고 헤어짐의 연속이다. 그런데 헤어지더라도 양육의 책임은 끝까지 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양육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아이들이 상처를 받는다고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이야기는 쏙 빼놓고 이혼 자체가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라고 한다면 이혼하지 않는 사람들만이 승자라는 거네. 이혼 한 사람은 패배자이고. 이런 각을 만드는 방송들이 싫다. 주입식 교육을 받는 것 같아서 꺼 버린다. 아직도 옛날 사람들이 나와서 옛날이야기를 하며 울고 웃게 만드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이러니 유튜브 쪽으로 도망가서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된다.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볼 수 있는 세상이 와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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