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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엘리아나 Nov 28. 2019

작은 용기가 필요할 때

어느 동네에나 맛있는 빵집이 있다.

우리 동네에도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빵집이 있다.

이 빵집은 나 말고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인기 빵집이다. 어느 주말 오후 그 빵집에 갔는데 맛집인 만큼 사람이 많았다.

이 곳은 손님이 빵을 담는 게 아니라 빵을 고르면 직원이 빵을 포장해주는 시스템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고른 빵을 말하고 있는데 직원이 머리를 한 번 쓱 넘기더니 그 손 그대로 빵 몇 개를 정리 후 내가 고른 그 빵을 집어 포장을 했다. 그리고 그 손으로 다시 내 카드를 받았다. 계산을 하려는 찰나 나는 고민에 휩싸였다.

왜 머리 만진 손으로 빵을 집으세요?라고 할까? 본인도 무의식적으로 만진 건데 너무 화내는 거 같나... 아니면 방금 머리 손으로 만지진 거 같은데요? 이렇게 부드럽게 얘기할까? 아니야... 내가 이 얘기를 하면 내 뒤에 서있는 사람들이 더 기다리게 될 텐데... 못 보고 맛있게 드실 분들도 있는데 내 오지랖인가? 근데 내가 항의를 하면 난 이 빵집에 다신 오기 그렇겠지? 등등 그 몇 초 동안 많은 생각들이 왔다 갔다.


그 사이 계산이 끝났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한 채 빵집을 나왔다. 그 와중에 다른 빵을 먼저 만지고 내 빵을 만졌으니 괜찮지 않나 하는 못난 생각을 하며 내가 침묵한 것에 대해 합리화하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회사 동료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한 명은 항의하지 않은 나를 이해해줬고, 한 명은 항의를 했었어야 했다고 했다. 그 얘기들을 들으니 나는 확실히 알았다. 내가 항의를 했었어야 했음을...

나를 이해해 준 한 명은 내 행동이 옳았다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나의 마음을 이해해 준 것뿐이었다.

그 후 뒤늦게 결심을 했다. 다음에 그 빵집에서 같은 행동을 본다면 항의를 해야겠다는 결심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생각을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그 빵집을 찾았다.

이번에는 단호하고 확실하게 항의할 것을 다짐하면서~

그런데 나의 다짐을 알고 있었었다는 듯이 빵집 직원은 머리를 만지기는커녕 철저하게 장갑 낀 손으로는 빵을 집고, 오른손으로는 계산을 했다.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지만 싫은 소리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항의를 하지 않게 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순간 한 생각이 나를 스쳤다.

이건 분명 누군가가 항의를 한 것이다.


내가 본 것도 들은 것도 아니지만 확신이 들었다. 정당한 일이라도 항의하는 건 쉽지 않다. 그걸 먼저 해준 누군가가 참 고마웠다. 손님의 작은 용기로 인해 내가 항의를 하지 않아도 되게 했고, 가르침도 주었다. 다음번엔 내가 먼저 작은 용기를 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생기게 되면 내가 먼저 시정을 요구하여 다음 사람이 불쾌한 상황을 겪지 않게 할 것이다. 그러면 그 행동이 나처럼 항의를 망설였던 사람에게는 용기를 내어 말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선한 영향력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 표현이려나?

빵 사러 왔다 가르침을 받다니 내가 지불한 빵값보다 몇 배 비싼 빵을 먹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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