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초조했던 나의 마음과 달리 남자친구의 답장은 매우 담담했다. 연락이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내 마음을 너무 몰라주는 것 같아 화가 나는 동시에 별일 없다는 사실에 안도감도 들었다. 당장 전화로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고 걱정 많이 했다는 답장을 보냈다. 남자친구는 다시 한번 사과의 답장을 보냈고, 그날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다음날 남자친구는 이전처럼 굿모닝 카톡을 보냈고, 나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인사를 나눴다. 전날의 일은 카톡이나 전화가 아닌 만나서 해야 할 중요한 이야기라서 우선은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남자친구의 잠수만이 아니었다. 잠수 이별로 오해하고 있는 사이에 연락 온 남자와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문제였다. 잠수 이별인 줄 알았는데 다시 연락 왔으니 우리의 만남은 없던 일로 하자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잠수 타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현재 남자친구와 나의 관계였다. 이번 일로 인해 남자친구에 대한 믿음이 곤두박질쳐서 우리의 관계도 위태위태했다.
양다리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상황이 돼버렸다. 이런 상황이 되니 자연스럽게 두 남자가 비교됐다.
(편의상 결혼정보회사에서 처음 만났던 남자를 남자 1로 칭하겠음)
두 사람의 공통점은 결혼정보회사에서 만난 11명의 남자들 중 이야기가 가장 잘 통한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남자친구가 더 잘 통하지만 두 번밖에 만나지 않은 1번 남과 비교하는 건 무리였다. 정성적인 건 비교하기 어려우니 정량적인 비교를 해봤다. 우선 1번 남은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한 초반에 받은 프로필이라 그때는 몰랐는데 50여 명의 프로필을 받아보고 나니 내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스펙이라는 걸 알았다. 그에 반해 남자친구는 스펙만 보자면 하위권이었다. 하지만 스펙보다 정성적인 부분을 우선시하는 나는 남자친구를 선택해서 잘 만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정성적인 부분이 무너지니 내 선택이 틀린 건 아닌지 고민이 됐다. 그 와중에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까지 오니 진짜 환승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그렇지만 내 성격상 남자친구를 만나는 동시에 1번 남을 만나는 건 용납이 안 됐다. 그래서 남자친구와 확실히 정리가 되면 1번 남을 만나기로 하고 연락만 이어나갔다.
며칠 후, 우리의 관계의 향방을 가를 남자친구와 만남을 가졌다. 만남 초반에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그날의 일에 대해 내가 먼저 운을 뗐다. 남자친구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 없다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만약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어떻게 할 거냐는 나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그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어떻게 할 거라는 말 대신 이런 일 없을 거라는 그의 대답이 더 마음에 들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지켜보기로 했다.
화해가 잘 됐다고 생각했는지 집으로 오는 길에 그가 자연스럽게 나의 손을 잡았다. 속상하고 서운했던 마음은 어느샌가 다 사라지고 설렘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이 사람을 참 좋아하고 있구나.
이렇게 된 이상 최고의 스펙을 가진 1번 남과는 이제 그만 정리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의 첫 어정쩡한 양다리는 1주일 만에 끝이 났다. 어쩌면 먼 훗날 1번 남을 놓친 걸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지금 최선의 선택은 현재의 남자친구이다.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잘' 연애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