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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엘리아나 Jun 07. 2024

그의 루틴에 '나' 끼워넣기 대작전

그의 잠수를 완전히 용서한 건 아니었지만 다시 만나기로 했으니 묻어두기로 했다. 하지만 두 번의 기회란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동시에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생기면 뒤돌아 보지 않고 바로 헤어질 거라는 계획도 세웠다.


이번 일을 겪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와 나의 트러블 원인은 항상 연락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 못 고쳐 쓴다고 초반부터 연락문제로 속을 썩이더니 결국 잠수 이별이라는 해프닝을 만들어냈다. 다시 만나기로 한 이상 연락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했다.

어떻게 하면 남자친구가 나에게 잘 연락을 할까?

사실 답은 간단하다.

내가 자주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면 된다.

아직 나는 자주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아닌 걸까?

연락 문제로 화가 났던 초반에 왜 연락을 잘 안 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남자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연애를 오래 쉰 탓에 연락을 먼저 할 때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가 어렵고, 자주 하는 것도 어색하다고 했다. 이제 어색한 사이는 아닐 텐데 여전히 그에게는 쉽지 않은가 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연락이 어렵고 어색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자주 연락할 수 있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가까운 사이가 되어 내가 그의 삶 속에 들어가야 했다. 자주 만나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물리적인 한계가 있으니 모닝톡과 함께 매일 저녁 통화를 제안했다.

조금 숙제 같기는 했지만 습관이 되기 위해서는 약간의 강제성이 필요할 거 같아서 이렇게 정했다.

사실 이 정도의 연락은 연인이라면 기본적으로 하는 것인데 규칙까지 정해야 한다니 현타가 왔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선택한 사람이 어렵다는데 그 사람의 노력만 강요할 수 없다.

나도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노력을 함께 해야 했다. 죄(?)가 있는 그는 흔쾌히 동의했고, 그날로 우리의 연애는 시즌2가 시작됐다.


실은 이렇게 구체적인 연락 규칙을 제안한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잠수 이별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그의 잠수가 이별로 이어진 건 아니었지만 너무나 생생하게 잠수 이별을 체험해서 다시는 비슷한 경험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 정도 연락 안 되는 건 참고 넘어갔던 이전과 달리 이제는 반나절 이상만 연락이  돼도 불안초조해졌다.

그래서 내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도 꼭 필요했다.


다행히 연락 자주 하라는 애매한 기준이 아닌 정확한 규칙을 정해서인지 효과가 있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남자친구는 약속을 잘 지켰고, 나도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더욱 가까워졌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다시는 잠수 타는 일 없을 거라는 남자친구의 말에 조금씩 믿음도 생기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나의 불안 제거와 연락을 위한 연락이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어느새 우리의 연락은 그와 나의 하루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나와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해 지금은 모닝톡만이 아닌 틈틈이 톡을 하며 통화도 자주 한다. 그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통화하던 베프와는 1~2주에 한 번 통화할까 말까 한다. 베프에게는 미안하지만 자연스럽게 남자친구가 베프가 되어가고 있다.

덕분에 잠수 이별에 대한 걱정도 사라졌다.


우리는 이제 안정된 연인의 길을 잘 걷고 있다. 앞으로는 다음 단계이자 마지막 단계인 결혼의 길을 향해 갈 준비를 할 때이다. 물론, 결혼은 아직 시기상조이다. 서로 알아가야 할 부분과 맞춰가야 할 부분이 한참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혼정보회사에서 결혼을 전제로 만난 이상 결혼에 대해 조금씩 생각해봐야 할 때가 왔다.

10년 연애한다고 해서 서로를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많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야 한다. 나이 때문에 급하게 결혼해서는 안되니 신중하면서도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게 알아가보려고 한다.


남자친구와 나, 어느덧 결혼을 향한 연애로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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