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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엘리아나 May 17. 2024

결혼정보회사에서 40대도 환승 연애가 가능할까?

40년 넘게 살아보니 인생은 계획했던 일보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웬만한 일에는 크게 놀라지 않는데 이번 일은 굉장히 놀라웠다. 잠수 이별을 당한 날, 다른 남자에게 연락이 오다니 진부한 표현이지만 운명의 장난 같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환승하라는 신의 계시는 아닐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까지 들었다. 잠수 이별의 충격이 채가시지도 않은 이 시점에 환승 연애를 떠오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갑자기 연락한 그 남자가 결혼정보회사에서 만났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내가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해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애프터까지 만났는데 삼프터는 이어지지 않아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아 있었는데 이 시점에 연락이 오다니 너무나 신기했다. 

나는 타고난 유교걸이라 양다리는 극혐 해서 하루 전날에만 연락이 왔어도 정중히 거절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잠수 이별을 당한 직후라 고민이 됐다. 긴 시간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짧은 고민 끝에 간단한 인사말로 답장했다. 답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서 다시 답장이 왔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없다면 다시 만나보고 싶다고 본론을 말했다. 


당연히 다시 만나보고 싶어서 연락했겠지만 바로 돌직구를 날리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또다시 고민이 됐다. 그러다 문득 왜 삼프터를 신청하지 않고 9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 연락이 온 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에게 물어봤자 어차피 정답 대신 둘러댈 것이다. 그러니 정답은 내가 알아내야 했다. 나의 정답은 이렇다. 애프터까지 신청한 걸 보면 내가 괜찮았을 것이다. 그런데 쏙 맘에 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Good이 아닌 Not Bad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서 삼프터까지 신청하지 않고 다음 여자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나보다 나은 여자가 없었다. 또는 있었지만 상대가 거절했다. 


그럴듯한 추리이지만 아닐 수도 있다. 정답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그에게 직접 물어봐야 했다. 

근데 또 잘못말하면 따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 미뤄두기로 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만나자고 하는 것도 우스운 것 같아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다시 답장을 했다. 나의 대답을 예상한 듯 그는 거절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해 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9개월 만에 연락한 그의 진정성이 의심스러웠지만 정중한 그의 태도를 보니 의심이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만나보면 진정성은 확인할 수 있을 테니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그와 문자를 나누다 보니 잠수이별 당한 슬픔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사람이 진짜 내 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혼정보회사에서 마지막에 만났던 사람과 연애하다 헤어지고, 처음 만났던 사람과 다시 만나는 것도 특별했다. 

머릿속에 지웠던 남녀 운명론이 부활하는 것 같았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이별에 펑펑 울고 있던 내가 운명론을 생각하고 있다니 남자친구와 내가 이 정도로 얄팍한 사이였나 슬프기도 했다. 그런데 가장 어이없는 건 아직 만난 것도 아닌데 운명론을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생각을 멈춰야 할 때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파란만장했던 설연휴 마지막날을 보내고, 자리에 누웠다. 20대도 30대도 아닌 40대가 결혼정보회사에서 환승 연애를 할 수 있다니 다시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었다. 20~30대 때도 안 해봤던 환승 연애를 이제 와서 한다니 잘 해낼 수 있을까? 이러다 밤샐 것 같아 억지로 잠을 청하는 순간 카톡 울림음이 울렸다. 오늘 진짜 무슨 날인가? 

이번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남자친구의 카톡이었다.

왜 또 절 시험에 들게 하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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