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2도의 한파를 뚫고 처음 만났던 우리가 어느새 여름을 함께 맞이하며 결혼의 길을 향하여 가고 있다.
결혼을 계획하게 되면 보통 서로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결혼식장을 잡고 집을 알아보는 순서로 진행하는데 우리의 순서는 달랐다.
마흔이 넘어 결혼을 계획하게 되니 함께 살 집 마련이 1순위였고 나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부모님들은 이 나이에 결혼하는 것만으로도 환영이어서 진짜 큰 결격사유 아니고서야 그다지 반대할 일이 없다. 그리고 나는 보통 여자들이 많이 신경 쓰는 결혼식장이나 웨딩드레스에 별로 욕심이 없었다. 30대까지만 해도 입고 싶은 웨딩드레스 스타일이 있었고, 마음에 드는 웨딩드레스를 보면 캡처해서 보관해 놓을 정도로 관심이 많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한테 어울리기만 하면 된다.
또한, 웨딩홀도 블랙이든 화이트든 상관없으며 위치도 어디든 괜찮다. 단, 하객들이 불편하지 않을 교통에 평타는 칠 수 있는 식사를 대접할 수 있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스몰웨딩도 좋다.
욕심을 좀 부리고 싶은 게 있다면 신혼여행 정도이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기도 하고, 신혼여행 아니면 길게 여행 가기 어려우니 먼 곳으로 최대한 길게 다녀오고 싶다.
이러한 이유들로 나머지는 제처 두고, 먼저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친구가 아파트 링크를 하나 보내왔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 보니 한참 분양 중인 경기도의 신축 아파트였다. 신축이라 그런지 내부 구조와 외관 모두 좋아 보였다. 조경도 잘 되어 있어서 살기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장점들을 덮어버리는 아주 큰 단점이 하나 있었다. 지금 우리의 생활 반경과 너무너무 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대신 가격은 굉장히 저렴했다.
남자친구는 그 아파트를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나도 그 아파트 자체는 마음에 들었지만 위치가 너무 안 좋아서 반대했다. 하지만 너무 마음에 들어 하는 그를 위해 직접 가보기로 했다. 실제로는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고, 얼마나 먼 거리인지 직접 체험해 봐야 남자친구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든 첫 경험은 설렌다. 우리의 첫 임장은 어떨지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도착하기도 전에 그 설렘은 사라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멀어서였다. 우리 동네에서 한참을 달려 서울 끝자락을 지나 경기도에 진입한 후에도 한참을 지나서야 아파트에 도착했다. 아파트는 자체는 사진에서 봤던 그대로여서 마음에 들었다.
조경도 산책하기 좋게 잘되어있었다. 딱 아파트만 보면 너무 좋았다. 그런데 멀어도 너무 멀다. 회사와 편도로만 2시간 이상 걸린다. 예상대로 남자친구도 너무 먼 거리에 혀를 내둘렀다.
생각보다 먼 거리를 오느라 피곤해진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근처 유명 대형 카페에 들렀다. 집에 돌아오니 좀 피곤하긴 했지만 임장은 데이트 코스로 꽤 괜찮은 것 같다. 새로운 곳을 가보는 것도 좋았고, 임장 아니었음 안 가봤을 커피와 빵이 맛있는 카페를 가본 것도 좋았다.
이날부터 남자친구는 집 알아보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틈만 나면 부동산 관련 유튜브나 기사를 보내왔다. 그러면서 다음 임장도 정했다. 이번에는 아파트가 아닌 강남 쪽의 빌라촌이었다. 동네 자체는 깔끔하고 마음에 들었다. 근데 아무래도 아파트보다 편의성이 떨어지고 나중에 파는 것도 아파트보다 쉽지 않을 것 같아 보류하기로 했다.
임장을 다녀보니 우리가 원하는 집의 윤곽이 조금씩 잡히는 것 같다. 그래서 당분간 시간 날 때마다 이곳저곳 임장을 다녀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