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싸운 적 없이 알콩달콩한 연애를 하던 우리가 드디어 첫 싸움을 하게 됐다. 그 시작은 역시나 연애 초반에 문제가 됐던 '연락'이었다.
금요일 저녁, 남자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다음날 오전이 돼서야 답장이 왔다.피곤해서 일찍 잠이 들었고, 답장을 하려니 너무 늦은 시간이라 연락을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실은 남자친구가 몇 주 전부터 주말 출근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 나와 데이트도 하느라 많이 피곤하긴 했을 것이다. 주말 출근 안 하는 나도 많이 피곤한데 얼마나 더 피곤할까 싶었다. 그리고 나를 만나는 날에는 최선을 다해 즐거운 데이트를 하니 이해해 줬다.
그런데 일요일에 또다시 연락이 없었다.
연락을 기다리다 저녁쯤 카톡을 보내니 피곤해서 쉬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의문이 하나 생겼다. 남자친구의 쉼은 대체 어디까지일까? 연인에게 카톡 한 두 번 보내는 것도 쉼에 포함되지 못하는 걸까? 그에게 묻고 싶었지만 이 부분은 좀 더 깊게 얘기를 나눠야 할 것 같아서 나중에 하기로 했다.
다음날인 월요일 저녁, 남자친구가 또 연락이 없었다. 전화해 보니 잠이 들어있었다.나이는 속일 수 없다고 40대 중반이 넘는 나이이니 체력적인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그래서 별 타박 없이 잘 통화했고, 잠들기 전에 연락 달라고 당부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다음 날인 화요일에도 아침 인사 이후, 또 연락이 없었다.아무리 피곤하다 해도 퇴근해서 카톡 한 번 주기가 그리 어려운 일인가? 분명 전날 신신당부했는데도 연속으로 이러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혹시나 해서 전화해 보니 또 잠들어 있었다.이번에는 화를 참을 수가 없어 금방 전화를 끊었다.혹시나 그에게 다시 전화가 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그도 화가 났는지 모닝톡이 오지 않았다. 우리의 첫 싸움 시작인가? 기혼자들의 조언 중 하나가 결혼 전 한 번쯤 싸워봐야 한다는 것이다. 싸웠을 때의 태도나 해결 방식을 통해 좀 더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싸우는 게 좋은 일은 아니지만 살짝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번 싸움으로 서로를 더 알 수 있고 잘 풀면 더 가까워질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또, 남자친구에게 우리가 싸우면 오빠가 먼저 손 내밀어 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었는데 그 말을 잘 지킬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현실은 저녁은 물론, 다음날도 연락이 없었다. 이틀이나 연락이 없으니 화가 났지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녁까지기다리다 전화를 했다. 다행히 남자친구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마음이 복잡한 나와 달리 아주 평온하게 말이다. 내 감정은 우선 뒤로 하고 무슨 일 있었냐고 걱정했다고 하니 아무 일 없다고 했다. 그럼 왜 이틀 동안 연락이 없었냐고 하니 피곤해서 그랬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할 말이 없었다. 연인 사이에 2시간도 아닌 2일이나 피곤하다고 연락을 안 하는 게 말이 되나? 물론, 남자친구가 주말 근무와 이른 출근으로 피곤하겠지만 밤샘 근무를 하거나 야근을 하지는 않는다.
나는 과연 그에게 어떤 존재일까?
복잡한 마음을 해결해보려고 한 전화였는데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계속 얘기하다가는 큰 싸움이 될 거 같아 우선 멈췄고 다음날 남자친구가 연락하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어떻게 해야 이 사태를 현명하게 잘 해결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 마침 주말여행이 계획되어 있어서 저녁에 맥주 한 잔 하며 잘 풀 수 있을것 같았다. 싸움은 싸움이고 미리 계획한 여행이니 재미있게 놀고, 저녁에 잘 얘기하면 잘 해결될 거라고희망 회로를 돌리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은 금요일 저녁, 아침 일찍부터 먼 길을 운전하는 남자친구를 위해 샌드위치를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샌드위치 빵을 사 오는 길에 갑자기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오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길 한가운데 멈춰 서서 폰을 꺼냈다.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또다시 그가 전화를 받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게 여자의 육감인 건가?
정말 그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처음에는 금요일이니 피곤이 쌓여 깊이 잠들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몇 분 후,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도 안 받았다.
설마 다시는 안 그런다고 했는데 또다시 잠수인가? 아니다. 아직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없다. 진짜 깊이 잠들었을 수도 있으니 카톡을 보냈다. 하지만 30분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 다시 30분 후,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했는데 역시나 안 받았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그가 사라졌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다음 임장할 아파트를 정하고, 주말여행에 필요한 용품을 함께 주문했던 그가 사라지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되니 연락 달라는 카톡을 보냈는데 다음날에도 1이 사라지지 않았다. 잠수일 것 같지만 무슨 일이 생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초초한 마음으로 수시로 폰을 확인했지만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의 연락은 없었다.
그리고 4일째가 돼서야 카톡의1이 사라져 있었다. 그걸 본 순간 화가 나기보다는 그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은 게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3일 동안 읽지 않았던 카톡을 읽은 걸 보니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 아닐까?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좀 더 정리한 후, 연락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