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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엘리아나 Jul 19. 2024

헤어짐에도 예의는 꼭 필요하다!

그와 연락이 안 되었던 첫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잠수 자체도 잘못된 행동이었지만 여행 전 날의 잠수는 상상도 못 한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다시는 잠수 타는 일 없을 거라는 말을 지키지 않은 것까지 더해지니 화를 넘어 분노하게 됐다. 그런데 그날은 너무 화가 나서인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 잠수라고만 생각했었다.


잠수이별이란 걸 깨달은 건 다음 날이었다.

걱정되니 연락 달라고 보낸 카톡의 1이 사라지지 않고, 전화도 없는 걸 보고 나서야 '잠수'아닌 '잠수이별'임을 알았다. 믿고 싶지 않고,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며칠 후에 연락 올 수도 있다. 머리로는 이렇게 희망회로를 돌렸지만 눈물이 쏟아졌다.


정신을 좀 차린 후, 만약에 아주 만약에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수도 있으니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한 기다림은 어느덧 2주가 지났고, 여전히 그는 연락이 없다.

이제 잠수이별을 확실히 인정해야 할 때일가?

지난 2주 동안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가 왜 잠수 이별을 택했는지를...


나는 그가 참 좋았다.

그와 나누는 대화들이 재밌었고, 즐거웠다. 가치관도 비슷했고, 음식 취향이 잘 맞아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같이 행복해했다. 뉴진스 음악을 들으며 드라이브하는 것도 좋았고, 함께 손을 잡고 걷는 것도 행복했다. 그와 함께라면 힘든 이 세상 서로에게 힘이 돼주며 알콩달콩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랬던 나의 그가 나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줬다.


그는 나와 나누는 대화가 재미없었던 걸까? 가치관이나 음식을 나한테 맞춰줬던 걸까? 아니면 운전하는 게 많이 힘들었거나 걷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억지로 걸었던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결혼 자금을 더 마련하기 위해 투자를 했다 다 잃은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의 잘못 때문은 아닌지 되돌아봤다. 지금 생각나는 건 연락 때문에 다툴 때 일방적으로 내가 전화를 끊은 사건 하나인데 설마 그게 잠수 이별의 이유일까?


2주가 아니라 2년을 생각해도 나는 그가 왜 잠수이별을 택했는지 알 수가 없다. 잠수이별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상대를 계속 지옥으로 몬다는 것이다. 이유를 알 수 없으니 자꾸 그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하게 되고,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자책하게 한다. 최악의 이별 방법 1위가 잠수이별이라고 하던데 내가 당해보니 1위가 맞다. 잘못은 상대가 했는데 내가 나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러면서 혹시나 연락이 오지는 않을까 기다리게까지 한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초반부터 연락으로 힘들게 하더니 끝끝내 잠수이별로 엔딩을 장식했다. 회피형일 거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나아지고 있다고 믿었는데 기본 성향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그가 잠수이별을 택하는 대신 이별을 생각하는 이유를 나에게 말했다면 함께 잘 해결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기회마저 빼앗아 도망쳤다. 말할 수 없는 이유였다면 적어도 이별 통보라도 했었어야 한다. 그게 한 때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마지막 예의이다.


(상대가 위협을 가하지 않는 이상) 이유가 무엇이든 잠수이별은 무책임하고, 비겁한 행동이다. 용서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의 사과는 받고 싶다. 나를 진정 사랑했다면 그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과를 할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잠수이별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거 같지만 그래도 일말의 가능성은 열어 두고 싶다. 이별이 아니길 바랐던 이전의 기다림과는 다른 기다림의 시작이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원래 이 글을 끝으로 브런치북 연재를 마치려고 했는데요. 아직 저의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고, 시간이 흐른 아니라 그가 연락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우선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금요일 연재는 더 이상 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글은 올리고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다음 주에는 새로운 글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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