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가 되면 인생 경험치가 많이 쌓여서 이별에도 담담해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늘 아프고 힘들다. 특히, 이번 이별은 잠수이별이라 충격이 커서 더 아프고 힘들었지만 비교적 빨리 회복한 것 같다. 그래서 이별 극복에 큰 힘이 되었던 3가지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운동
머릿속이 복잡할수록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움직임들에는 많은 종류가 있는데 그중 가장 효과적인 건 운동이다. 운동에 집중하다 보면 생각을 멈출 수 있고, 운동 후에도 어느 정도 효과가 지속된다. 만약 운동할 여건이 안된다면 걷기도 좋다. 다른 운동에 비해 집중력이 떨어지는 편이라 이별에 대한 생각이 계속될 수 있지만 걸으면서 하는 생각은 가만히 있으면서 하는 생각과는 첨예하게 다르다. 집에서 하는 생각은 대부분 좋지 않은 생각들로 이어진다. 특히, 밤에 하는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끝을 알 수 없는 절망으로 빠뜨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걸으면서 하는 생각은 마음이 조금씩 정리되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계속된다 해도 깊은 절망까지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밤보다는 해가 떠있는 시간에 걷는 걸 추천한다. 밝을 때는 생각도 조금은 더 밝아지며 햇빛을 많이 받으면 밤에 잠도 더 일찍 잘 수 있다. 이별 후, 가장 괴로운 시간이 밤이다. 그 밤에 괴로운 생각대신 잠을 푹 잔다면 회복 속도는 훨씬 더 빨라질 것이다.
커피
코로나 시절, 캡슐커피머신인 돌체구스토를 구입했다. 만족하며 잘 마셨었는데 최근 좀 질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버츄오 커피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솔깃해졌다. 솔깃한 와중에 대폭 세일까지 하니 자연스럽게 구매로 이어져다. 직접 맛을 보니 기대한 것보다 더 맛이 좋았다. 웬만한 카페보다 더 나은 수준이었다. 캡슐 종류도 30가지가 넘는데 9종류는 구매했고, 2종류는 사은품으로 받았다.
11종류가 있다 보니 오늘은 어떤 캡슐을 먹어볼지 고르는 소소한 재미가 있었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소확행이 됐었다. 여기서 웃픈 사실은 이 캡슐들 중 대부분을 전 남자친구가 사줬다는 것이다. 데이트할 때 내가 캡슐 커피를 만들어 갈 때가 많았는데 새로운 캡슐 머신을 샀으니 같이 먹으려고 사준 것이었다. 여기서 더 웃긴 점은 정작 전 남자친구는 새 캡슐을 못 먹어봤다는 것이다.
기존 캡슐 커피가 많이 남아서 다 좀 더 먹고 새 캡슐을 먹기로 했는데 그 사이에 이별을 하게 됐다. 그도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덕분에 혼자 잘 먹고 있다. 나에게 큰 상처를 준 사람에 준 사람이 사준 커피로 힘을 얻는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커피는 죄가 없다. 계속 소확행을 즐겨 보려고 한다.
사람
이번 이별에서 가장 힘이 됐던 건 사람이었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힌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사람이란 '새로운 연인'을 뜻한다.
그런데 내가 말하는 사람은 '새로운 연인'이 아닌 '주위 사람들'이었다. 때마침 멀리 사는 친척이 장기간 우리 집에서 지내기로 했었는데 딱 헤어진 그때였다. 혼자 있었으면 울고불고하는 시간이 많았을 텐데 친척 덕분에 가장 힘든 시간이 짧게 지나갔다.
그다음으로는 친구들이었다. 잠수이별은 나에게 날벼락같은 일이었지만 청첩장 받을 날을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특히, 유부녀들이 더 분노하며 위로해 줬다.
결혼한 지 10년 넘은 친구들이라 결혼 생활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기에 잠수 타는 사람은 결혼해서는 안될 사람이라며 다행이라고 했다. 인생의 동반자가 될 뻔한 한 사람을 잃었지만 내 곁에는 나를 진정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남아 있어서 큰 힘이 되었다.
실은 이별에 가장 효과가 좋은 건 시간이다.
그 시간을 견디는 게 가장 힘든 일이지만 이 또한 지나간다. 나는 이제 막 가장 힘든 시간을 빠져나왔고, 완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