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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Nov 20. 2021

미안해, 네 잘못이 아니야

어린 시절의 나와 직면하기 

나는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나는 그것을 비로소 진심으로 인정한다.  

상담 쪽으로 심리 쪽으로 석박사를 졸업한 시누 언니가 십여 년 전에 내가 그린 '나무'를 보고 상처가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감추는 모습까지도 이제는 그 무엇에도 상처 받지 않으리라는 움켜쥠까지 읽어낸 시누 언니가 많이 밝아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어두운 면이 있다고 했다. 그 역시 인정한다. 상처는 종래엔 '내가' 되었다는 걸 알았다. 


휴직을 앞두고, MTS 검사에서 꽃을 빨간색으로 색칠한 그림을 보고 선생님이 물어왔다. "죽음과 관련된 상처가 있어요?" 나는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대답하지 않은 채 얼버무렸다. 기어이 차오른 눈물은 결국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도착해 시누이와의 통화에서 터져 버렸다. 

어느 것 하나 말끔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은 제법 괜찮아진 삶의 질 앞에서 나아진 듯 보였지만, 아니었다. 단단히 보호막을 치고 덮어 둔 것은 그저 회피해 버린 방어기제에 불과했다. 그 속에 살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닌 것처럼. 행복한 지금을 살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다. 정말 괜찮아지기도 했으니까.


기억은 동사처럼 움직이고 살아 있는 것이었다. 상처는 기억과 달라서 아픈 것이라 여기고 약을 바르면 언젠가 회복되겠지 하는 기다림 같은 것이었다. 상처는 굳어진 채로 있는 것이었지만 기억은 움직이며 생생한 느낌과 감정과 아픔을 동반했다. 상처완 질감이 다른 것이었다.  


죽을 때까지 직면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면서 나는 내 문제를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서 찾으려 했는지도 몰랐다. 그 말을 따라가다 보면 그럴듯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그리고 마치 그런 일은 없었던 일처럼. 그 속에 나는 내가 아닌 것처럼- 대하면서 나는 내가 싫었다. 사랑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어린 시절의 내가 끔찍하게 미웠고 싫었다. 


최악의 환경과 가난, 결핍은 나를 찐따 같은 '나'로 만들어 놓았다.(얼마 전 친구 딸이 물었다. "이모 찐따였어요?" 정말 찐따였어서 할 말을 잃었었다.) 

 



하나의 퍼즐로 완성되지 않은 기억의 조각은 모두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내 성기를 만지는 손. 그 손은 오랜 시간 내 성기를 만졌다.

국민학생이었던 어린 여자의 성기를 만지던 그 얼굴을 떠올리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분명히 있었을 얼굴이 완벽히 동그랗게 지워진 채 성기를 문지르는 손만이 선명해 나는 어떻게든 그 기억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아닐 수도 있다고, 내가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가면서. 


길게 땋은 머리에 검은 모자를 쓰고 팔을 쭉 뻗은 채 콩콩 뛰어다니는 강시를 피해 숨을 꾹 참고 있는 사람들이 텔레비전 화면 한 가득이었다. 당시 텔레비전에서 하던 '강시'를 좋아했다. 무시무시한 공포를 벌벌 떨며 보고 있는데 느닷없는 손이 내 팬티 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누구와 강시를 보았던 것일까. 그 손은 팬티를 떠날 줄 몰랐고,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더 이상 강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은밀한 곳을 문지르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 뒤로 동네 뒷산에서도 방에서도 그 손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 팬티 속으로 들어왔다. '싫다'라고 말도 못 하는 어린 내가 그 남자의 손에 붙들린 채 멍청한 얼굴로 방에 놓여있었다. 나를 거꾸로 들어 올려 혀를 집어넣은 날. 나는 그 속에서 나와 이가 갈리는 분노로 어린 '나'를 부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줄기차게 그 기억으로부터 도망 다녔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무지'한 상태에서 그 '손'에서 부모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애정을 느꼈다는 것에서 말할 수도 없는,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수치심과 죄책감을 홀로 지고 당연히 받아야 할 벌쯤으로 여기며 끌어안았다. 내가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내가 그 손에 애정을 느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결단이었다. 용서할 수 없는 나를 오랫동안 괴롭히는 것으로 대신했고, 미워하는 것으로 벌을 주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싸구려 취급하는 것으로 바닥 같은 '나'를 시궁창으로 끌어내렸다.  


나를 해친 것으로부터 보호받지도, 벌을 내리지도 않은 부모를 보면서 나는 세상에 어떤 기대와 꿈과 희망을 내려놓고 그저 공기를 마시고 뱉으며 살았을 뿐이었다.


부모가 있는 집에서 폭력과 울부짖음에 귀를 틀어막고 빈방에 홀로 남아 낯선 남자의 손끝에 매달린 어린 '나'를 현재의 나조차 줄곧 미워했다. 사랑받지 못한 존재. 사랑이 고파 느닷없는 손끝에서 애정을 느낀 불쌍한 어린 나를 향해 병신 같다고 그러니 그런 꼴이나 당하지 욕이 나왔다. 성폭력과 성추행의 피해자 그룹에 나를 끼워 넣고 싶지 않았다. 달라지는 건 없는데도 그러는 내가 우스웠다. 미투니 페미니 공론화되어 떠들 때도 '여자가 얼마나 몸을 함부로 굴렸으면' 오롯이 나를 향해 욕을 퍼부었다. 그러나 어린아이를 상대로 저지른 성범죄 앞에서 나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일고 무너지면서도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겼다. 


그런데 그건 분명 내 일이었고, 내 것이었고, 부정할 수 없는 기억이고 사실이었다. 

달라지지 않았다. 

부정할수록 더 비참해지고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 또한 성폭력, 성추행의 피해자였다. 

받아들인다. 


딱딱하게 딱지가 앉은 상처가 많다는 건, 조금만 찔려도 아픔을 더 빨리 느끼는 것과 같다. 

찔리기 전, 지레짐작하고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려 들게 하는 것과 같다. 

내성이 생길 법도 하지만 상처는 찔린 횟수만큼 더 물렁해지고 약해져 가 조금만 찔려도 아픔을 빠르게 흡수해 버리는 것과 같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 모든 것- 기억과 상처가 나를 이루고 분위기가 되고 내 색깔이 되고 내 세계를 이루었다. 


그런 나를 이제 모양이 아닌 실제로 받아들이고 사랑해 보고자 한다. 

상처 받은 얼굴 그대로. 

나인채로.


끔찍한 외로움에 놓여 있는 너에게 미안해.

오래 미워해서 미안해.

사랑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런 나를 용서하기로 한다. 






불과 3~4일이지만 이 글을 쓸지 말지를 놓고 고민했어요. 

제게 글은 앞서 썼지만 '해방'과 같은 것이에요. 그 기억에 담겨 있는 몸과 마음을 빼내는 일. 어쩐지 이 고백은 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엄청 울면서 적었네요. 


인간은 '사랑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이미 있다는 걸 잊지 않기로 해요. 

태어남과 동시에 고귀하고 고결하고 존중받아야 할 마땅한 존재.

오랜 시간 부정해 온 어린 나를 이제야 놓아줍니다. 


아시죠? 우리 잘못이 아니에요. 


저처럼 오랜 시간 자신을 미워하지 않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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