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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Dec 02. 2021

사랑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건

남편의 지고지순한 사랑

25살에 처음 만난 남편이 나는 단번에 좋았다. 


얼굴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눈, 코, 입이 마음에 들었다. 첫눈에 반했었다,라고 말하면 모두가 아리송한 낯으로 남편과 나를 바라봤다. (나는 정말 당시엔 그랬다)

첫 만남이 있은 뒤로, 참지 못하고 먼저 연락한 나와 놀다 헤어지기 전 남편은 마치 세상의 모든 용기를 끌어다 쓰는 것처럼 "우리 교제할까요?"라고 했다. (헤어지기 일보직전인데, 이 남자는 언제 나에게 사귀자고 할 건지, 속이 타던 차였다. 뜻밖의 말에 나는 속으로 웃었다. 교제가 뭐야...)

어쨌든, 우리는 그날 1일이 되었다. 


그와 나는 완벽한 '합'을 이루고 세상에 마지막 남은 '영원'을 붙들고 긴 연애를 시작했다. 어떤 이는 우리에게 'set'라고 불렀다. 그는 나에게 제2의 부모인 동시에 애인인 동시에 친구인 동시에 완벽한 내 편이었다. 첫사랑의 아픔도 잊고, 끔찍한 기억도 잊고, 지옥 같은 집에서 나와 그와 함께 있으면 모든 걸 잊고 완벽한 행복감으로 웃을 일이 많았다. 편안하고 사랑받는 기분에 한껏 취해 있었다. 그의 품은 나의 다정한 안식처였다. 


학생 땐 시간을 쪼개 알바를 해서 번 돈으로 면허학원을 등록해 주고, 노트북을 사주고, 카드를 쥐어 주고는 학교 수업 끝나면 친구들이랑 맛있는 '밥'을 사 먹으라고 했다. 만원을 들고 모든 끼니를 때운던 때가 있었다. 나는 그때의 그 허기가 떠오를 때면 가진 돈을 모조리 쓰는 것으로 그 시절의 견딤을 보상했다. 그가 내민 카드를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가끔 그 사실이 부끄럽다) 친구에게 밥을 사주며 허세를 부려보고, 마음에 드는 옷과 신발을 사고, 가당치 않은 호사를 보란 듯이 누렸다. 부모조차 주지 못한 소소한 챙김을 나는 처음으로 낯설게 받아 보았다. 지긋한 외로움에 그의 챙김은 나는 너를 이토록 사랑해,라고 말하는 모든 말이었다. 내가 필요한 어느 곳이든지 그는 마법처럼 나타났다. 나타나서는 한결같은 표정으로 든든한 전봇대처럼 내 옆에 있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단단한 보호막이 한없이 좋으면서도 '불안'을 이룬 내 세포들은 우리를 불행의 길로 싸움의 길로 여지없이 데려갔다. 죄 없는 그에게 죄를 묻는 것으로 지난 시절의 내 삶의 억울함을 그에게 덮어 씌웠다. 그는 잘못이 없었다. 그는 내 앞에서 무고한 죄인이 되었다. 불행한 기억들은 결국 온전한 관계마저도 깨트리고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는 불신을 가져왔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에게 '헤어짐'을 이야기했을 때, 그는 울었다. 멀리서도 나는 그의 빨개진 눈을 확인했다. 그가 나를 이토록 사랑하는 이유를 찾으려고 별짓을 다하며 나는 나 자신의 바닥 같은 자존감을 증명하려 애썼다. 그는 나를 떠나지 않는 것으로 내가 얼마나 사랑받을 만한 존재인지를 삶 곳곳에서 무던히 증명했다. 내가 가진 그 '무엇'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나'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준 유일한 존재.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한없이 퍼주면서도 그는 나에게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오롯한 내 마음이 자신에게만 향하길 바랐고 믿었다. 


"당신은 나를 왜 사랑해?" 열 번을 넘게 질문을 했는데도 남편은 명쾌한 대답을 해준 적이 없다. 세상에 그런 질문도 있냐는 듯, 늘 웃어넘겼다.   

이 사람은 '천사'인가. 여겨질 정도로 그는 모든 삶의 초점을 나에게 두고, 내 필요를 알고 채워 주었다. 하나님이 보내준 선물 같은 '사람' 임을 시간을 함께 쓰며 절절하게 확신해 갔다. 


그는 나를 향한 자신의 사랑도,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존재를 '부정' '의심' 하지 않았다. 요즘 말로 '근자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그런 모습에 장난스러운 딴지를 걸면서도 닮고 싶었다. 그런 사람이 내 남편이라서 자랑스러웠다. 그런 사람이 내 아이들의 아빠라서 다행이었다. 


아이를 낳고 친구와 떠난 여행에서 돌아온 나에게 쓴 남편의 편지엔 이런 말이 있었다.

"당신의 행복이 내 행복인 건 알지? 다음에 또 보내 줄게"

그의 곁을 오랫동안 비웠었다. 나는 새장에 갇힐 수 없는 새였다. 언제든지 날아갔다 돌아오는 새였다. 날지 못하면 병이 났다. 날아가서 본 모든 슬픔과 아름다움을 겁 없이 사랑하고 돌아와서는 슬픔과 기쁨의 여운을 얼굴에 진득하게 묻히고 돌아온다. 그런 모습을 보고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묻지 않고 변함없는 모습에 나는, 남편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는 내 인생을 통틀어 내가 가진 가장 큰 축복이었다. 



 

내년 1월이면 결혼 11주년을 맞이한다. 결혼 11주년을 맞이 한다는 건, 더 이상 그가 '천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상처가 많은 사람은 결국 상처를 그만큼 주고 산다- 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나는 다른 누구보다 그에게 상처를 가장 많이 준 사람이었다. 그 역시,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 한 두 개쯤은 남겼다. '삶'은 '사랑'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부족한 모습인 채로 서로의 곁에 머물고 있다. 나는 아직도 그의 사랑을 의심하고, 그는 여전히 오롯한 자신에게만 향하는 내 사랑을 애달프게 기다리며. 끝을 모를 사랑을 붙들고 갈등을 건너 하루를 버틴다. 


나는, 우리의 이런 아슬아슬한 주고받는 당김이 좋다. 익숙해진 '사랑'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 같아서.  


술을 마시지 않는 남편과 술을 마시면 늘 마음껏 취한다. 그는 그래도 되는 사람, 나의 바닥을 보여도 되는 사람.이라서 작정하고 술을 마실 때가 많았다. 그런 그에게 언젠가부터 "너는 내 인생의 루저야"라고 악에 받쳐 이야기했다. 사실 그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도 알았는지, 왜 내가 당신 인생에 루저냐고- 물을 법도 한데 그는 단 한 번도 묻지 않는다. 역시 알 수 없는 근자감이다.!  


당신은 내 인생의 루저가 아니야.

당신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성공이야.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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