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어려서는 집에 밥이 없어 동네 어귀에서 파는 국수를 얻어먹으며 끼니를 때우고, '부모'라는 품도 모르고 하나밖에 없는 언니가 기차에 치여 세상을 등진 것과 세명의 오빠들 틈에서 생긴 외로움을 가늠해 보면서, 학업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먹고사는 문제에 뛰어든 현실과 스무 살에 만난 아빠와의 불장난 같은 사랑 때문에 나를 덜컥 낳아 버린 것. 아빠의 끊이지 않는 바람과 노름, 폭력...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다 따져보니 어느 순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살았다.
잠잠할 날 없는 무수한 세월을 이고 지고 건너와서는 벌써 마흔을 넘긴 딸 앞에 달라진 거 없이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엄마를 본다. 나는 그것이 못내 속상하다.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고, 얼마든지 가능했을 법도 한데 엄마는 늘 참혹한 현실 앞에 묵묵했다. 당장 다른 선택을 하리라 으름장을 놓았지만,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기막혀하고는 그뿐이었다. 늘 자리를 지킨 엄마였다.
누군가 불행을 말할라 치면 네가 우리 엄마보다 불행해? 어디 한 번 드러나 보자 속으로 날을 새웠다. 엄마의 불행을 곱씹고 곱씹으며 세상 가장 불행한 인생이라는 타이틀을 씌우고 단단히 걸어 잠갔다. 그리고 나는 세상 불쌍한 엄마의 딸인 채 남편을 붙들고 친구를 붙들고 울었다. 입가엔 초콜릿을 묻힌 채 마음은 가난하다고 울었다. (입에 묻은 초콜릿이나 닦아,라고 말하고 싶었을 수 도 있다.)
어느 날, 초등학생이 된 아들이 물었다. "엄마! 아빠의 아빠는 왜 둘이야?" 나중에 크면 알려 줄게. 깜짝 놀란 마음을 서둘러 감추고 다른 말을 찾았다. "방 정리는 했어?" (아이들은 나도 모르게 자라 있었다. 이후로도 친할머니와 사는 친할아버지를 보면서, 종종 찾아가는 S할아버지께 '아빠'라고 부르는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며 혼자 사는 할아버지의 존재를 아리송해했고, 언젠가는 시아버님께 할머니는 왜 없냐고 묻기까지 해서... 나는 밥상 앞에서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연애 때도, 결혼하고서도 꽤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는 시부모님들을 보면서 남편에게 그 연유를 물었던 적도 없었다. 종일 텔레비전 앞에서 집을 지키는 아버님과 일주일에 한 번씩 집으로 와 나눔 반찬통에 반찬을 그득히 채우러 오는 어머님을 보면서 어쩌면, 다시 합칠 수 있다는 기대를 안 한 것도 아니었다. 고통과 상처는 세월 앞에 무뎌지기도 하니까.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도 한 어른들의 말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아서.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순수한 희망을 내심 품었다.
새 시아버님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쌍둥이들이 6살이 되고, 결혼 한 지 9년이 지난해였다.
이미 하루의 해가 제 할 일을 마치고 어둠이 몰려올 때쯤 시어머니는 집 앞 카페로 나를 불렀다. 잠을 못 주무셨는지 얼굴이 푸석한 채 눈 밑이 거뭇했고 이미 눈이 부어있었다. 며느리 앞에서 죄인이 된 얼굴로 10년 하고도 10년이 더 지난 일을 쏟아내며 뺨으로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냈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엄마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거야"라고 하며, 처음 알게 된 새 시 아버지의 존재를 설명하며 나의 이해를 바랐다.
숨 막히게 더운 여름날 걷다가 땅바닥에 개미 든, 달팽이 든, 콩벌레든 눈에 띄면 쪼그려 앉아서 그것들을 본다. 쳐다보고 있으면 시끄러운 속이 가라앉고 돌연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샘솟아서 '무엇'을 위해 열심인지 모르겠는 그것들을 쳐다본다. 태연스럽다가도 시답지 않은 하나가 거슬리면 기다렸다는 듯 조악하고 추악한 모습이 튀어나왔다. 미쳐가던 하루하루가 있었다. 엄마의 인생이 억울했고, 혼자 남은 시아버지의 인생이 불쌍했다. 시어머니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은 엄마의 인생이 못 견디게 쓰라리고 억울했고, 시아버지와 같은 처지가 되지 않은 아빠가 얼마나 복 받은 사람인지 빈정대며... 인생들을 비교하고 불행과 행복을 갈랐다. 이단에 빠져 집도 주고 절도 주고 가진 걸 모조리 주는 가족들에게서 옷만 걸친 채 도망쳐 나온 새 시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낡고 오래된 기차가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거 같은 기분으로 귀를 틀어막고 싶어졌다.
시어머니를 보면 화가 났고, 엄마를 보면 가슴이 미어졌다. 어떤 날은 심장을 주먹으로 쳤다. 화를 낼 수 없는 시어머니에게는 무턱대고 오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보기만 해도 짜증부터 올라오는 엄마에겐 비수 꽂는 말로 그날의 만남을 마무리했다. 엄마의 인생에 빗대어 시어머니의 인생은 퍽 괜찮은 인생이었고, 늘그막에 혼자 지내는 시아버지의 인생을 탐탁지 않게 여기며, 가족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친정아빠의 인생은 복에 겨운 호사 같았고, 이단에서 빠져나온 새 시아버지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사는 거 같은 시어머니의 현재를 응원해 주고 싶지 않았다.
누가 더 불행하고 누가 더 행복한지 줄 세우기를 하느라 마음은 나날이 무너져 갔다.
부질없는 짓이란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던 건 무엇이었을까. 시어머니는 다시 돌아간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 했지만 결국 '그런 선택'을 한 삶을 눈으로 보며 멈추지 않았던 엄마의 인생을 비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더 괴로워졌다. 죄 없는 남편에게 부모님의 인생을 따져 물었던 날- 그는 독한 말을 퍼붓고는 돌연 괴로움과 절망을 뚝뚝 떨어뜨리며. 부모님은 부모님의 '인생'이 있고, 그들만의 '사정'이 있으며, 우리가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거야.라고 했다. 나는 아주 오래도록 울었고, 마음이 하얗게 녹아내려 없어지는 거 같은 기분으로 아침을 맞았다.
부모님들의 삶들과 유리되어 있다가 만나고 온 날은 꼭 병이 났다. 어떤 마음으로 있어야 할지 몰라 억지로 시간을 꾹꾹 삼킨 채 집에 오면 긴장이 풀려 내내 막혀 있던 채기가 내려감과 동시에 삽시간에 두통이 몰려왔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들을 하며 인고의 시간을 지나 지금의 삶 앞에 놓인 부모님들의 삶. 과거를 운운하지 말고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재단을 멈추고 그저 내 할 도리를 해보자고. 마음먹어보지만 얼굴을 마주하면 허무하리만치 다잡은 마음이 허물어졌었다.
불행 겨루기를, 줄 세우기를 하지 않기로 또박또박 쓰며 마음먹는다.
제일 불행하다는 엄마의 삶에 붙은 숫자 1을 지우고 부모님들의 삶의 번호를 지우기로 한다.
지나옴의 흔적이 녹아든 얼굴들은 모두 가슴 한쪽이 뻐근하고 뼛속 깊이 저리는 아픔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다. 더 아프고 덜 아프고를 어떤 누가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 우린 모두 그럴 자격이 없다. 각자가 가진 사연을 함께 아파하며 위로가 되어주고 새로운 힘이 되어 준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면 그뿐이다. 오늘 세운 내일의 계획이 무용지물이 되는 세상 속에서 어쩌면 죽을 때까지 '무엇'으로도 '완성'하지 못할지라도 끝도 없이 피어오르는 '문제'를 푸는 과정 속에서도 삶의 짜릿함과 잠깐 머무는 행복을 맛보며 산다는 거다. 삐뚤어지고 고장 난 마음을 고쳐 먹으며 시기 어리고 표독스러운 표정을 조금씩 지워가며 더디게라도 성장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나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나를 보지만 변하려고 '애쓰는' 모두를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