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고한 정체성은 아이의 미래를 좌우한다.
심리사회적으로 정체성은 ‘개인이 속한 집단에 대한 귀속감 내지는 일체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바르게 인식하고 구성원으로서 자긍심을 가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체성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단체에서 역사와 신념을 배움으로써 정체성을 키워나간다. 정체성이 확고히 자리 잡으면 흔들리지 않는 자긍심과 유대감을 만들 수 있다. 확고한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어떠한 어려움과 위기가 닥쳐와도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도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수많은 고민을 한다. 강한 유대감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입시에 쫓겨 생각할 시간이 없고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부모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공하는 삶을 살도록 강요하며 공부외의 모든 경험을 차단한다. 자신에 대해 답을 찾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다. 자존감과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으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견디지 못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우리였다. 특히 10~30대의 사망 원인 1순위가 자살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바른 자존감과 정체성을 정립했다면 그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도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역사를 배우고 가르친다. 정작 역사 교육이 우리 아이들에게 민족적 자긍심이나 유대감을 형성하지는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시험 성적을 위해 선조들이 이룬 업적과 사건들을 외울 뿐이다. 아이들은 역사 교육을 통해 우리 민족이 추구해온 가치와 전통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암기하고 외우는 교육 때문에 오히려 역사를 어려워하고 힘들어 한다. 시험을 위한 역사교육으로는 아이들에게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전달하기 어렵다.
심리 사회적 발달이론을 수립한 정신분석학자 에릭슨[Erik Homburger Erikson]은 청소년기가 ‘정체성 대 혼돈(identity vs. role confuison)’의 시기라고 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자신이 누구인지’ 또 ‘무슨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정립이 되면 건강한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그렇지 못할 경우 자신의 역할에 대해 혼란이 오며 정서적으로 불안정해 진다고 정의했다. 에릭슨은 건강한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청소년기에 두 가지를 경험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는 ‘소속감’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탐색’이다.
우선 가정에서부터 우리 자녀가 건강한 소속감을 만들도록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하자. 아이들은 충분한 사랑과 인정을 받음으로써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낀다. 자신을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부모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서적 안정감을 찾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자녀의 이야기를 경청해주고 어려움을 함께 고민해 주자. 여행이나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게 하자. 자녀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부모는 곁에서 지켜보며 도와야 한다. 건강한 정체성은 부모와의 바른 관계를 형성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올바른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한다.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에 대해 아는 능력, 즉 메타인지[Metacognition)가 필요하다. 메타인지는 문제해결력과 자기조절능력으로 이어진다. 이는 아이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게 돕는 원동력이 된다. 메타인지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학습에 의해 개발되는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질문과 대답을 통해 제자들이 스스로 정체성을 찾게 했다. 유대인들도 <탈무드>를 배우며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은 어떤 것이지 고민할 수 있도록 시간을 허락해 주자. 충분히 고민하고 스스로 답을 찾은 아이는 열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매진할 것이다.
정체성이 확립된 아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는다. 또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자신을 지키며 흔들림 없이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정체성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부모는 자녀와 함께 오랜 시간 고민하고 생각해야 한다.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대화와 질문을 통해 자녀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자녀에게 질문하기 전에 우선 부모인 나부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해보자. 부모의 정체성이 확실할 때 자녀에게도 바른 정체성을 전달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