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불안장애 사회복지사 '부끄고릴라' 양의 이상한 하루
어릴 적
'사회불안장애'가 있는 나에게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었던 것은
자연과 동물이었다.
늘 '사람' 친구가 있길 바랐지만
친구가 가까이 다가오면
부담스럽고 부끄러워서 도망가거나
관계를 피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혼자 산에 가는 것을 즐겨했고
산에서 올챙이를 잡고
얼음을 깨고 땅을 파는 시간이 많았다.
엄마는 늘 혼자 외로워하는
외동딸이 안쓰러웠는지
집안에 십여 종 유의 동물들을 곁에 두셨다.
강아지, 토끼, 이구아나, 개미, 닭, 오리, 다람쥐,
햄스터, 거북이, 메추리, 장수풍뎅이 등등...
그러다 보니
나의 어릴 적 기억에 남는 장면은
친구와 가족이 함께하는 그림이 아니라
언제나 동물과 함께 있거나 산에서 무언가를
잡는 그림뿐이다.
내 마음을 위로하고 안정되게 만들어주었던 것은
강아지였고 올챙이였다.
나이 마흔이 되어서도 여전히
동물을 좋아하고 홀로 산책을 즐긴다.
오늘은 처음 보는 색깔의 청설모를 만나서
카메라에 담으며 말을 걸었다.
"솔 모야~~ 넌 참 예쁜 옷을 입었구나!
보통은 짙은 고동색 옷을 입었던데
너는 옅은 갈색 옷이네~ 매력적이다!"
숲을 걷다가 주위에 아무도 없으면
더 큰 목소리로 새와 청설모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누가 보면 참 순수하다 느낄지 모르겠지만
내 안에 깊은 '외로움'은 나만이 알 수 있다.
예전에는 이 외로움이
그저 피해야 하고 느끼면 안 되는 감정 따위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생각이 점차 바뀌어간다.
'외로움'이라는 녀석도 내 안에 살고 있는
하나의 소중한 감정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외로움과 친구 하며
감정을 조절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에너지가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려 한다. 인정하려 한다.
그래. 나 외로운 사람이야.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남들보다 조금 일찍,
그리고 조금 깊이,
외로움을 알게 되었을 뿐...
학창 시절에는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심한 부모님의
가스라이팅으로 공부만이 인생의 전부인 양
살아오다 보니
지극히 착한 아이 증후군(코디 펜던트)에
마음까지 쿠쿠 다스였던 나는
길을 걸어 다니면서도 책을 읽었고 수학 문제를 풀었다.
사실은 주위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것만 같아서
책의 글자가 머릿속으로 들어올 리가 없었고
수학 문제집은 그냥 공부 잘하는 척을 위한
손에 들린 아이템이었을 뿐이다.
친구들은 내가 배려하고 양보하는 모습과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겉모습에
속아 넘어가 나를 학급 임원으로 뽑아주었지만
가면성 우울증이 심했던 나는
겉과 속이 다른 나 자신을 느끼며
더 깊은 우울의 웅덩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나는 반장이지만 동시에 왕따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집에서는 자기애성 성격장애 부모님 아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해내느라 외로웠고
학교에서는 반장이자 왕따 역할을
할 수밖에 없어서 외로웠다.
그리고
나르시시스트 성향을 조금 가지고 있는
남편과 20년을 함께하면서
수용과 인정보다
늘 나의 잘못과 탓으로 돌려야 마음이 편했기에
가면성 우울증과 사회불안장애는
정점에 이르렀다.
부모님과 20년,
남편과 20년,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나는
마흔이 되면서 삶을 정리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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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할 때
나를 아프게 했던 부모님과 남편에게서
아주 미세하지만 변화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그토록 추웠던 겨울이 다 지나고
죽은 것만 같아 보였던 나무에서도
몽우리가 맺히듯 말이다.
바로 어제 도봉산을 내려오다 마주친
목련꽃 몽우리 친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