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무늘보'가 되고픈 부끄 고릴라입니다.
나 자신을 가꾸고 돌보며 아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살았다.
자기애성 성격장애 부모님과
치매로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는 할머니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돌보아야만
가족이 평안하다 느꼈던 나.
온통 누군가를 돌봄으로
존재를 증명할 수 있었던 나로서는
'나를 사랑하자.'라는 문구는
극도의 이기주의자가 말하는 것이며
그러한 생각조차 죄악시 여겼다.
내 입에서조차 나를 사랑한다라는 것에
대한 거부반응과 거북스러움이 느껴졌다.
말 그대로 불편했다.
반대로
'타인을 사랑하자.'
'이웃을 사랑하자.'
'어려운 사람을 돌아보자.'
이러한 말들은 나에게 알 수 없는
책임감과 의무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이 말들이 편했다.
그렇게
태어나서부터 스무 살까지
타인 중심적 삶을 살다가
스무 살, 사회복지학과를 진학하게 되면서
병적인 수준의 타인 중심적, 돌봄 중독,
관계 중독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온 부끄 고릴라는
어김없이 예외 없이 직업까지도
누군가를 돌보는 '사회복지사'가 된다.
그렇게 스무 살부터 지금의 마흔까지
고도로 발달된 코디펜던트 성향을 장착하고
신나게 여러 사람들을 살리는 일에
나의 젊음과 에너지, 열정과 사명감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딱 서른아홉 겨울, 마흔을 코앞에 두고
내 코가 석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다른 사람을 돌보고 돕는 일을
누구보다 열심히,
성실하고 정직하게 해 왔다.
타인 중심적으로 사는 삶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칭찬받을 수 있는 일이라 여겼기에
부모님의 안정적인 사랑에 목이 말랐던
나로서 사회에서 인정받고 사랑받고자
건강하지 못한 쪽으로
그 사랑을 갈구해 온 것이다.
내 안에 구멍이 이렇게나 많이
있다는 사실을 마흔이 되어서야
볼 수 있게 되었고
이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오직 남을 위해서 사랑을 퍼주다 보니
내 안에 헛헛함과 외로움은 극에 달했다.
우물 안에 물이 없는데
열심히 바가지 질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40년을 헛발질했는데
남은 40년도 헛발질하면...
한 번 사는 인생이 너무 아까워서라도
제대로 건강한 길로 돌아서야겠다.
나에게 유일한 무기가 있다면
바로 '오기'이다.
이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한다.
늦었다고 생각이 들어서
처음에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내가 살아온 삶이 너무
안쓰럽고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그리고 나를 정서적 착취 대상으로
이용하고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긴
사람들에게도 화가 나서...
그러나 이제부터는 다르다.
오뚝이가 넘어질 수 있지만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조금 더 나의 감정을 조절하는데
여유가 생겼고 나를 인정하고 용서하며
충분히 기다려주기로 했다.
수많은 상담 관련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어떻게 변해야 할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 변화의 속도를 최대한 늦추려 한다.
너무 빨리 먹으면 체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너무 빠른 속도로 살아와서
마흔부터는 삶의 속도를
나무늘보처럼 슬로 모션으로 전환한다.
실수해도 괜찮아.
돌아가도 괜찮아.
쉬어가도 괜찮아.
그게 바로 '너'야.
처음에 '폭삭 속아수다'라는 말이
'정말 디져불게(엄청나게ㅋ) 속았다'
는 말인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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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를 뜻하는 제주도 사투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