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끄고릴라 Feb 26. 2023

나의 엄마를 '아동학대'로 신고합니다.

저는 아동학대 피해자이자 생존자입니다.




33년 전 나의 엄마를

아동학대 가해자로 신고합니다.



[아동학대]

나는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입니다.

다문화가정 및 청소년 복지를 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이기 때문이죠.



저는 아동학대 피해자이자 생존자입니다.

눈에 보이는 멍이나 상처만이

아동학대의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더 깊고 오래도록 아물지 않는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상처(정서적 학대)입니다.

그것도 남들 앞에서는 선량한 부모인 척하면서

집에서는 감정 조절을 벗어나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여

비난과 평가, 깎아내림 등

아이의 자존감을 은근히 짓밟는

말투와 행동은

서서히 목을 조여 오는 살인마와도 같습니다.



지하 창고에 옷도 걸치지 않은 채

감금되어 있는 그 공포의 시간은

아직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

내면의 자아를 힘들게 합니다.





부모를 미워하고 신고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착한 아이 증후군에 빠져

정서적 착취를 하는 부모님께

무조건 순종적인 아이 코스프레를 해왔습니다.

두꺼운 가면을 쓰고 말이죠.







저는 어제 아랫집을

'아동학대'로 신고했습니다.


거의 반년 동안 고민을 하다가 용기를 냈습니다.

밤 11시에서 12시만 되면

엄마의 고함소리와 아이의 처절한 울음소리는

반복적으로 들렸습니다.

바로 아랫집이기 때문에

방바닥에 귀를 대면 대화 내용까지도 들립니다.



"내가 그렇게 하지 말랬지!

오늘 나랑 같이 죽어볼래!

내가 너 때문에 죽어야지!

언제까지 안 고칠 거야!"




훈육과 학대는 엄연히 다릅니다.

저는 한 부모 가정을 돕는 사회복지사로

가정폭력 상담을 많이 하고 있으며

이주여성 중에도 아동학대가 의심되며

예의주시하고 있는 사례도 종종 있습니다.


저는 33년 전 아동학대를 당했기 때문에

아무도 남의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자녀교육에

관심을 갖지 않았고 오지랖이라 여길 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아동학대는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동안

너무나도 일상적으로 자주,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도 신고하기까지 얼마나 망설였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익명을 보장해 준다고 해도

아랫집에서 우리가 신고했을 것이라

100프로 의심할 텐데

신고 이후에도 계속 이웃으로 마주칠 때가

생길 텐데...

괜히 보복심리로 우리 집에 찾아와

해코지를 할 것만 같아서 두려웠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불안한 상황에서

공황발작을 할 만큼 마음이 여리고

사회불안장애가 있기 때문에

막상 112에 신고를 하고 나서

한 시간 동안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귀를 대고 들어보니

아랫집 아줌마는 억울한 나머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울다가 화를 내다가를 반복하더군요.




참 안타까웠습니다.

아동학대로 신고를 한 것은

벌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아이를 보호하고 지켜주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윗집에서 엊그제 시끄러워서

자기가 쫓아 올라가 폭발적으로 화를 내서

그에 대해 보복하려고 신고한 것일 거라며

분에 못 참아 한참을 식식거립니다.


엊그제 저희가 아이들이 좀 시끄럽게 했던 건

인정하기 때문에 아주머니에게 죄송하다고

몇 번이고 사과드리며

바로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우리가 그에 대한 보복이라면

뭐 하러 경찰에 신고할까요?

그냥 내려가서 시끄러우니 조용히 해달라고

한마디 하면 되는걸요.


아이가 걱정되고 염려되어 아동학대로

신고하려는 생각은 6개월 전부터 가졌었고

망설이다가 어제 용기를 낸 것뿐인데 말입니다.





어젯밤에 아동학대 신고 후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33년 전 저와 같은

아동학대 피해자가

바로 아랫집에 사는 아이가 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조금만 관심 가지고 주위를 돌아보면

아픔과 상처 속에 방치되고 힘겨워하는

이웃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집 일은 내가 상관할 바 아니라 생각하는

방관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눈과 귀를 열어 이웃의 아픔에

용기를 내어 한 발자국 다가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것이 오늘 이 글을 남기는 이유입니다.



아직도 저는 생각에 잠겨있습니다.


'과연...

어제 나의 행동이 옳은 것이었을까?'




작가의 이전글 내 인생, 폭삭 속아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