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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끄고릴라 Mar 30. 2023

앞으로 며칠은 먹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사회복지사로 살면서 가장 짜릿한 순간에 대한 이야기.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

이 말을 보고 들은 적은 있지만

내가 직접 느끼고 말로 내뱉은 적은

없었다. 

물론 내 배 아파 낳은 자식들을 바라볼 때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말이다.

오늘은 처음으로 내 자식이 아닌

나의 제자를 통해 깊은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회복지사인 나는 2008년부터

위기가정의 아이들을 많이 만나왔다.

수많은 아이들 중에서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던 

7살짜리 꼬마 공주님이 

어느새 자라 스물한 살이 되었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아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에게 영향력 있었던 녀석이다.

이 녀석 덕분에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게 됐고

평생 이러한 아이들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삶을 살고 싶어서 사단법인을 만들게 되었다.

부모님의 이혼, 보육원 생활, 아빠의 가정폭력, 

엄마의 아동학대, 성폭력 등 ...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 기적인 아이였다.

하루는 엄마의 폭력을 피해 집을 나와

찜질방에서 잠을 자던 사춘기 시절,

우리 집으로 불러 먹이고 재웠다.

그 당시 아이와 했던 약속이 있었다.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이라도

힘든 일 있으면 샘한테 전화해.

샘이 너 있는 곳으로 달려갈게."

아이가 삶을 정리할까 봐 걱정되었고

내 곁을 떠날까 봐 두려웠다.

나에게 있어 유일하게 감정 컨트롤이

불가능한 영역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과 같은 

아이의 떨리는 목소리와 눈물이다.

이전에는 나도 어렸고 미성숙했기 때문에

이러한 자극에 LTE 급으로 반응했었다.

그러나 마흔이 된 지금은 

조금은 긴장과 템포를 늦추고

유연하게 여유를 가지고 대처하려 한다.

왜냐하면 어른인 내가 조급하고 흥분한 모습을

보이면 아이는 극도의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엄마의 학대 속에서 오랜 시간 지내온 아이.

어쩌면 엄마의 엄마 역할을  자처하며

그것을 생존수단으로 발달시켰던 아이.

그래서 늘 아이 앞에서 미안함뿐이었다.

선생님으로 더 깊이 안아주고

세심하게 챙겨주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만 같아서

그 시간들이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우연히 그 아이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무심결에 톡으로 말을 걸어보았다.

아이는 반응해 주었고 그렇게 우리는

오늘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이의 고백에 나의 마음은 철렁 내려앉았다.

"선생님, 제가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인 줄 아세요?

제가 엄마한테 자주 맞고 힘들어서 집 나가고

그럴 때 선생님이 대안학교 보내주셔서

대안학교에서 보낸 중학교 시절이 제일 행복했어요.

그런데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3년 동안

몸에 문신하고 방황했던 시간들이 후회돼요.

그래도 검정고시 시험 합격하고

지금 이렇게 대학교에서 연극 영화과 전공하며

잘 지내고 있어요. 

우울증 때문에 힘들었는데 연기하면서

많이 좋아졌어요.

연기할 때 가장 행복하더라고요."

고등학교 방황하던 때 

옆에서 힘이 되어주지 못했던 내가 미웠는데

어느새 이렇게 자라 듬직한 어른이 되어있었다.

아이와 같이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쑥스러워 말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글로 전했다. 











사회복지사로 17년을 일해왔지만

이렇게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경험은

처음이다.

누군가를 살리고 일으켜 세워주는 삶을

살고 싶어 선택한 이 길.


좁고 외로운 이 길을 계속 걸어갈 힘을

아이를 통해 얻게 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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