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많은 엄마
한 동안 정말 괴로웠던 순간이 지속되었던 적이 있었다.
부모라면 대부분 자식을 혼내고 난 뒤에 마음이 쓰리고 아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정도의 감정을 넘어서 아이들에게 인격을 다 들켜버린 듯한 상황이 반복되었고 그러다 보니 큰 좌절의 나날이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그러한 일상의 괴로움 속에서 혼자 어쩔 줄 몰라하던 시절이었다.
그땐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 방안이 떠오르지 않아 생각을 지우고자 내가 제일 좋은 하는 일인 책을 읽었는데 그때 당시 나의 손에 잡혀있는 책들은 모조리 육아서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아이의 감정을 다룬 것에 더욱 몰두해서 말이다
나의 의식의 흐름이 그렇게 흘러간 것-
아이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이기에 그렇게 행동하는 걸까?
정말 궁금했고 정말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땐 아들과의 소통방식에서 매번 부딪히는 상황이었는데 정말, 매일이 그런 식으로 반복되다 보니 미칠 것만 같았고
내가 너무 몰라주나 싶어 어떡해서든 꼭 알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여러 책을 읽으면서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방법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그 깊은 속에는 나의 내면의 문제가 가장 크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이의 행동과 말투에서 내가 발끈하며 태도가 행동이 되어 나가는 건 전부 나의 불편한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란 걸 말이다.
나를 돌아봐야 했다. 나의 내면을 알아주고 채워야 했다.
그렇게 한동안은 큰 트러블 없이 지나가고 있었고 평화로워지자 나의 불편한 내면도 해결된 듯했다. 분명히
그러나 다시 평화가 깨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며칠 되지 않았다. 아이가 3학년이 되면서부터 더욱 본인의 생각과 주장이 강해지기 시작했고 말투 또한 세졌으며 옆에서 듣고 있노라면 신경 거슬릴만한 대화를 해대는데 참고 참다가 결국 나의 불편한 마음이 다시 터지고 말았다.
지난 주말 터져버린 나는 평소라면 절대 아들에게 쓰지 않을 말들을 해댔다. 아들이 했던 말들을 똑같이-
“ 비 올 때까지 후드려 맞을래?”
“한대 쳐 맞을래?”
너는 이런 말 들으면 어때!!! 하며 구석으로 몰아치며 한바탕 소란의 폭풍이 지나갔고 이어서 아이들을 잠자리에 들었다.
남편과 맥주 한잔 하며 앉아 있는데 또다시 자괴감이 밀려왔다. 다시 또 현명하지 못하고 어리석게 반응하며 대꾸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말이다.
그날 새벽, 중간에 잠이 깼는데 아들에게 했던 나의 모습들 이마구 떠올라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고 나는 다시 나를 돌아봐야 했으므로 책으로 구원에 손길을 내밀었다.
그렇게 읽게 된 책이 인스타그램에서 알게 된 이은경 작가의
‘나는 다정한 관찰자가 되기로 했다 ‘이다.
읽으며 많은 부분이 공감되었지만 그중 표현되는 널리 뛰는 감정선이 너무 나와 비슷해 신기해하면서도 나의 행동을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고, 정말 많은 깊은 위로를 받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는 스스로가 인정하는 감정이 이쪽
저쪽 널리 뛰는 널뛰기 엄마니까-
책을 읽으면서 나의 개선할 부분을 끊임없이 생각하며 다시 한번 감정을 정리해 냈고, 마음속 스스로 정한 목표는 욱! 해서 말하지 말고 함부로! 말하지 말고 아들 말투에 동요하지 말며 부모의 자세로 알려주고 타일러주자는 거였다.
역시 초반엔 생각대로 목표대로 행동하기 좋다. 그 후 몇 번이나 욱했지만 책을 떠올리며 참아내고생각대로 행동했다.
스스로 나름 잘 참고 있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어느 날 나를
곤히 보던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정말 성격이 우여곡절이 많다”
아들의 신선한? 표현에 훗, 하고 웃다가 이내 얼굴이 벌겆게 달아올랐고 민망하기도 하면서 순간 미안하기도 하면서 마냥 미안해졌다.
아이가 내 모습에 혼란을 느꼈을 거 같아서 말이다.
아들의 눈엔 내가 어때 보였을까? 엄마라는 사람이 어떤 날은 부드럽다가도 금방 터져버리고 가라앉아 있다가도 이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과 마음이-
물론 내가 혼자 오락 가락 하는 건 아니지만 아들의 눈엔 혼자 그러고 있다고 보였을 것이고, 성숙하지 못한 모습과 내 안의 해결되지 못한 불편한 감정으로 인해 아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으로 생각이 많아졌지만 아들의 말에 정신이 차려진 것도 사실이다.
나는 말에 굉장히 예민하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정확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한마디 말에도 혼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그런 사람이란 말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된 것은 돌이켜 생각해 보면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항상 눈치를 봐야 했던 환경 속에서 노출된 나의 생존 방법이기도 했다.
하필 아들이 나의 이런 면을 담아 말투와 그 속에 담긴 높낮이까지 신경 쓰는 예민함을 가지고 있고 거기다 욱! 하며 지르는 모습까지도 똑같이 말이다.
나를 닮게 태어나버린 걸 어쩌나, 나를 닮았다면, 그렇다면
내가 바뀌는 방법밖에 없고 백날 말한다고 한다고 깨우치고 바뀌지 않을 것이다. 환경에 노출되는 모습을 스펀지처럼 바로흡수 하는 아이들에겐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나는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널뛰기 엄마인 이유에 대해 설명하며 조심하고 고치도록 하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각오의 선언을 했다. 그럼에도 또 욱! 하는 모습이 나왔고 아들도 욱! 나왔고 서로 불통의 끝이 찾아오려고 할 때는 대놓고 이야기를 했다
무작정 미안해가 아닌, 엄마는 이래 이랬는데 그게 아니라 먼저 이렇게 해줘서 고마워를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서 미안해라고 말을 하니 아들에게 엄마 이렇게 저렇게 해서 미안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평화로워진 우리 집.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감정 속에서 오락가락할 우리의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거기다 수없이 욱! 하는 엄마지만 심각한 감정의 널뛰기를 하는 엄마가 아닌, 서로의 감정 속에서 배려하며 이해하며 나아가는 그런 우리 집. 그런 엄마가 되리라 다짐해 본다
자식새끼 키우기 참 힘들다.